♬靑春馬車(1939년)/김영춘♬
(異河潤 作詩/李龍俊 作曲/仁木他喜雄 編曲)
1.♬
해지면 잊으리라 떠나왔으나
이슬에 젖는 밤은 꿈만 고달퍼
외로운 가슴속에 눈물 흐르고
찬바람 뺨을 씻고 지나가누나
2.♬
모든 것 버리리라 돌아다보니
아직도 남은 미련 못 잊는 님아
세상이 무정하여 울던 그 밤에
하늘에 뜬구름도 눈물짓노라
3.♬
봄길이 천리라면 갈길도 만리
말방울 포장길도 마차는 간다
덧없는 세월속에 부질없는 꿈
타향도 타향이요 고향도 타향
輕音樂
靑春馬車(1939년) 노래의 作詩者 연포(蓮圃)/이하윤(異河潤)
출생 1906년
사망 1974년
경력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부위원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최고위원,
방송용어심의위원회 위원장
직업 시인
대표작 물레방아
분야 문학/현대문학
요약 1906∼1974. 시인·영문학자
개설
아명은 대벽(大闢), 후에 항렬을 따라 이하윤으로 개명하였다.
호는 연포(蓮圃). 강원도 이천(伊川) 출신.
아버지는 이종석(異宗錫)이며, 어머니는 이정순(李貞順)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18년 이천공립보통학교,
1923년 경성 제1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1926년 도쿄 호세이대학[法廷大學] 예과,
1929년 법문학부 문학과를 수료하였다.
전공은 영문학이나 대학 재학 중에 프랑스어·이탈리아어·독일어를 배우기도 하였다.
1929년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는 경성여자미술학교(1929∼1930)·
동구여자상업학교(1942∼1945)에서 교편을 잡았고,
『중외일보』(1930∼1932)·『동아일보』(1937∼1940) 기자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광복 직후에는 좌익의 프로문학에 대항하여 중앙문화협회를 창설하여
상무위원을 역임하였다.
혜화전문학교(1945), 동국대학교·성균관대학교(1947∼1950) 교수를 거쳐
1949년부터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3년 정년퇴직하였다.
퇴직 후 덕성여자대학교 교수 겸 교양학부장으로 있다가 작고하였다.
1956년 유네스코아시아회의(일본 도쿄)에 한국대표로 참석한 것을 필두로
한국 문화계 및 문학계를 대표하여 10여 차례나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하였다.
『민주일보』·『서울신문』의 논설위원과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부위원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최고위원, 문인협회 이사, 한국비교문학회 회장,
방송용어심의위원회 위원장 등 많은 공직을 역임하였다.
문학 활동은 1926년『시대일보(時代日報)』에 시 「잃어버린 무덤」을
처음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1926년 『해외문학』 동인 및
1930년 ‘시문학’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1931년 ‘극예술(劇藝術)’ 동인, 1932년 ‘문학(文學)’ 동인으로도 활약하였다.
그의 시는 대체로 애조를 띤 민요조의 서정시가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1939년에 발간된 그의 첫 시집 『물레방아』는 시상이나
리듬의 단조로움으로 인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채
같은 서정시 계열의 시인인 김소월(金素月)이나
김영랑(金永郎)의 그늘에 묻혀버린 느낌을 준다.
따라서, 그의 문학사적 공헌은 창작시보다는
외국시의 번역 소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니
역시집 『실향(失香)의 화원(花園)』(1933)은
이 방면에서 1930년대 문학 활동을 대표하는 업적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불란서시선(佛蘭西詩選)』(首善社, 1954) 등
역시집과 『현대서정시선(現代抒情詩選)』(博文書館, 1939)·
『현대국문학정수(現代國文學精髓)』(中央文化協會, 1946)·
『현대한국시집(現代韓國詩集)』(漢城圖書, 1955) 등의 편저가 있다.
연포(蓮圃) 이하윤(異河潤)님의 代表詩集 물네방아 表紙
연포(蓮圃) 이하윤(異河潤)님의 代表詩 물네방아 詩碑
♣머무시는 동안 즐거우셨으면 합니다♣
★一片丹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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