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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옛노래

♬慶州 나그네/이규남♬

  
    ♬慶州 나그네/이규남♬

    1.♬ 炒急에 마음 실고 꽃을 꺾으며 半月城 넘어가는 慶州 나그네 가는 봄 오는 봄아 말 물어보자 瞻星臺 추녀 끝에 별이 몇 개냐 2.♬ 西兄山 바라보며 회파람 불고 雁鴨池 돌고 도는 慶州 나그네 풀 캐는 아가씨야 말 물어보자 花郞이 風流하던 곳이 어데냐 3.♬ 개왓장 하나 집어 품에 안고서 풀피리 불고 가는 慶州 나그네 에밀레 鐘 소리야 말 물어보자 砲石停 띄운 잔이 몇 잔이더냐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이규남(1910~1974)에 관하여 간단하게 소개한다. 이규남은 충청남도 연기군 출생으로 본명은 윤건혁이다. 휘문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에 유학하여 정식으로 피아노를 공부하고 돌아온 엘리트였다. 1932년경부터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1933년 임헌익(林憲翼)이라는 이름으로 콜럼비아레코드에서 첫 음반을 발표하여 가수로 데뷔했다. 초기에 취입한 노래는 신민요풍의 음악들이었다.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활발한 가수 활동을 하면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일본에서는 미나미 쿠니오(南邦雄)라는 이름을 썼고, 임헌익 대신 이규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사용한 것은 1936년에 빅타레코드에서 음반을 내면서 부터이다. 빅타에서 활동할 때는 홍난파(홍난파는 가요를 작곡할 때는 '나소운'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가 특별히 이규남을 아껴 다수의 곡을 작곡해주었다. 나소운의 곡으로는 ‘사막의 려인’이라는 노래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이규남은 1941년에 다시 콜럼비아레코드사의 전속가수가 되었다. 이규남이 부른 총 140여 곡의 가요 중에는 대표작 ‘진주라 천리길’(1941)이나 만요 분야의 히트작 ‘장모님전 상서’(1938) 등 인기곡도 적지 않았으나, 한국 전쟁 중 월북하여 오랫동안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는 동안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특히 ‘진주라 천리 길’은 월북 작사가인 조명암이 작사하고 작곡 역시 월북 작곡가 이면상이 맡은 곡이라 금지곡으로 묶여 있었다. 이 노래는 ‘사의 찬미’처럼 요시프 이바노비치의 ‘다뉴브강의 잔물결’ 선율로 시작되는 세련된 곡이다. ‘진주라 천리길’은 나도 노래방에서 몇 번 불러본 노래인데, 저작권은 가수가 이미자로 설정되어 있다. 내가 전에 글을 쓴 적이 있는 남인수의 ‘해 같은 내 마음’(사나이 결심)도 가수가 이미자로 설정되어 있다. ‘진주라 천리길’은 이미자가 나중에 다시 불렀지만, ‘사나이 결심’은 이미자가 부른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남인수의 ‘해 같은 내 마음’은 조용필이 다시 부르면서 ‘사나이 결심’으로 제목을 바꾸었고, 가사도 약간 바뀌었는데, 노래방의 반주기에는 조용필 버전으로 되어 있다. 물론 가수는 이미자로 되어 있다. 조명암은 월북 후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고, 이면상은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까지 올라 북한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음악인들이다. 내가 전에 유호가 가사를 쓴 현인의 ‘신라의 달밤’은 조명암이 쓴 ‘인도의 달밤’ 가사를 표절한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인도의 달밤’은 노래로 발표되지 않았고, 나중에 유호가 내용을 조금 바꾸어 ‘신라의 달밤’으로 발표한 것 같다. 이규남도 조명암, 이면상과 같이 북한에서 순탄한 삶을 살면서 작곡과 무대예술 분야에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지나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펌)
♣머무시는 동안 즐거우셨으면 합니다♣
 ★一片丹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