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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옛노래

♬찔레꽃 / 백난아♬

  
    ♬찔레꽃 / 백난아♬ (1980.옛노래 힛트곡 20선.고봉산 기획작품집/지구레코드 JLS-1201552) SIDE - 1                        SIDE - 2

    1.찔레꽃                                                                     1.아리랑 낭랑
    2.낭랑 십팔세                                                                             2.금박댕기
    3.일자일루                                                                          3.산팔자 물팔자
    4.갈매기 쌍쌍                                                                             4.황성옛터
    5.대지의 항구                                                                         5.나그네 설움
    6.목포의 눈물                                                                      6.번지없는 주막
    7.아주까리 선창                                                                          7.타향살이
    8.알뜰한 당신                                                                                8.해조곡
    9.청춘고백                                                                  9.애수의 소야곡
                                                                                      10.너와 나(건전가요) ♬찔레꽃/백난아♬ (김영일 작사/김교성 작곡) (1941,태평 레코드사) 1.♬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위의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삼년전에 같이앉아 백인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그리운 시절아 2.♬ 달 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그대와 연분홍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자주고름 입에물고 눈물 흘리며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사람아 3.♬ 연분홍 봄 바람이 돌아서는 북간도 아릅다운 찔래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동산에서 슬피울고 호랑나비 춤을춘다 그리운 고향아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2년에 백난아가 부른 한국의 트로트 곡이다. 첫 발표 시기는 1941년 5월이라는 설도 있다. 김영일이 작사, 김교성 작곡한 곡으로, 한국의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찔레꽃을 소재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렸다. 처음 백난아가 이 노래를 발표했을 때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온 것은 아니었으나, 이후 광복과 한국 전쟁 등을 거치면서 향수를 자극하는 가사가 시대적 상황과 맞아떨어지면서 꾸준한 인기를 얻어 '국민가요'로까지 불리게 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김교성과 백난아가 만주 공연을 다녀온 뒤, 만주 독립군들이 고향을 바라보는 심정을 담아 만들었다고 한다. 가사 중 3절에는 "북간도"라는 배경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북방의 이국에서 "남쪽나라 내 고향"과 "못 잊을 동무"를 그리워하는 애절한 사연이 소박하게 담겨 있는데다, 푸근하고 따뜻한 백난아의 창법과 잘 어우려져 한국적 정서와 망향의 아픔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백난아는 1922년 1월 16일에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1940년에 광주여고보(전남여고)을 졸업하고, 1940년 태평레코드와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주최한 콩쿠르 대회에서 2등으로 입상하였다. 같은 해, 선배가수 백년설에게 ‘ 백난아’라는 예명을 받고, 오동동 극단을 취입하였다. 〈오동동 극단〉이 히트되자 그녀는 계속 〈갈매기 쌍쌍〉, 〈망향초 사랑〉, 〈땅버들 물버들〉, 〈도라지 낭랑〉, 〈아리랑 낭랑〉, 〈찔레꽃〉, 〈흥아의 봄〉 등을 취입하였다. 대한민국이 일본에게서 해방될 직전까지 태평레코드에 전속으로 있으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해방 직후에는 ‘파라다이스 쇼단’을 운영하며 대한민국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고, 1949년부터는 럭키레코드 전속으로〈금박댕기〉, 〈낭랑 18세〉, 고려 레코드에서 〈인도야곡〉을 발표했다. 그러나 곧 한국 전쟁이 일어났고, 그녀는 전쟁 중 연예인들의 아지트였던 대구로 피난하였다. 그 곳에서 여러 연예인들과 활동하며 한때는 군예대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전쟁 후에는 태평레코드와 서라벌 레코드에서 활동하며, 〈멕시코 나이트〉, 〈고랑포 아낙네〉 등을 취입하였다. 1960년대까지도 활발히 신곡 취입을 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주로 극장무대에서 활동하였다. <단장의 미아리고개>의 작곡가 인 이재호는 그녀의 부군 이다. 본격적인 TV시대가 열리면서, 그녀는 원로가수 대접을 받으며 방송출연을 활발히 하였는데 특히 〈가요무대〉에서 자주 출연하였다. 1992년에 대장암이 발병했고, 평소 지병이던 고혈압이 겹쳐 1992년 9월 23일에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머무시는 동안 즐거우셨으면 합니다♣
 ★一片丹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