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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牡丹 / 진선미♬

      
    ♬牡丹 / 진선미♬ 
    (1983.진선미 1집 - 김 송 작사,작곡 / 대도 레코드 DSKS-01)
    

    SIDE - A

    1.즐거운 노래
    2.눈물속의 꽃
    3.그리움
    4.어린가봐요
    5.망향 나그네
    6.노랑나비
    7.꽃비

    SIDE - B
    1.사랑도 전자시대
    2.피고싶은 꽃
    3.무지개 추억
    4.푸른 약속
    5.모란
    6.고향의 찬가
    7.이세상 어린이(건전가요)

    중국 유일의 여황제였던 당나라의 측천무후(624~705)는 어느 겨울날, 꽃나무들에게 당장 꽃을 피우라고 명령을 내린다. 다른 꽃들은 모두 이 명령을 따랐으나 모란만은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래서 불을 때 강제로 꽃을 피우게 하려고 했지만 무위로 끝나자 화가 난 황제는 모란을 모두 뽑아서 낙양으로 추방시켜버렸다. 이후 모란은 ‘낙양화’로도 불렸고, 불을 땔 때 연기에 그을린 탓에 지금도 모란 줄기가 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한시와 일화로 보는 꽃의 중국문화사》, 2004, 나카무라 고이치, 뿌리와 이파리. 모란은 중국 중서부 지방을 원산지로 하는 자그마한 꽃나무다. 원래는 약용식물로 재배되어 왔지만, 양귀비를 모란에 비유하는 등 당나라 이후 모란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대상물이 되었다. 아름답고 화려한 꽃의 대표 자리는 모란이 차지했다. 그래서 모란은 예로부터 화왕(花王)이라 하여 꽃 중의 꽃으로 꼽았다. 또한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꽃으로 청나라 이후 중국의 국화로 대접받았다. 1929년에 국화를 매화로 바꾸었으나 당시의 장개석 정부가 타이완에 망명해버리면서 아직 중국은 국화가 정해지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 사랑받던 모란은 신라 진평왕 때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대부분의 식물이 언제 수입되었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모란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확실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선덕여왕 1년(632)에 모란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해져 온다. 진평왕 때 당나라에서 온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얻어 덕만(선덕여왕의 공주 시절 아명)에게 보인 적이 있다. 덕만은 “이 꽃은 곱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왕은 웃으면서 “네가 어떻게 그것을 아느냐?”라고 물었다. 그녀는 “꽃을 그렸으나 나비가 없기에 이를 알았습니다. 무릇 여자로서 국색(國色)을 갖추고 있으면 남자가 따르는 법이고, 꽃에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르는 법입니다. 이 꽃이 무척 고운데도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이는 틀림없이 향기가 없는 꽃일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씨앗을 심었는데, 과연 그녀가 말한 것과 같았다. 그녀의 앞을 내다보는 식견은 이와 같았다.
♣머무시는 동안 즐거우셨으면 합니다♣
★一片丹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