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無情한 밤배 (1969)/패티 김♬ blog.daum.net/shs7741▒ 一片丹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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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情한 밤배 (1969)/패티 김♬
(김령인:작사/홍현걸:작곡)(1967年에 發表)
1.♬
여자의 운명은 사랑이기에
이 생명 다하도록 맹세했건만
무정한 밤배는 내 님을 싣고
허무한 내 마음을 울려만 주네
2.♬
울리는 마음도 아프겠지만
울고 있는 가슴도 쓰리답니다
눈물의 밤배는 내 님을 싣고
다시는 못 올 길을 떠나가네
다시는 못 올 길을 떠나가네.
앨범 : 패티김(무정한 밤배)/위키리(사나이 눈물)
제작회사 : 1969.신세기 가-12175 홍현걸:작곡집.
歌手 패티 金
풍부한 성량과 정확한 발음, 세련된 무대매너로
반세기가 넘게 최정상의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가수 패티 김!
그녀는 외모에서 풍기는 도회적 이미지대로
1938년에 서울 한복판인 인사동에서 태어났다.
本名 : 김혜자 (金惠子)
出生 : 서울 1938. 2. 28
1956년 김혜자라는 본명으로 국무총리배 판소리 경연대회에서 입상하여
첫 데뷔하였고 3년 후 1959년 미8군 무대에서 가수로 데뷔하였다.
이 시기에 지은 패티라는 예명은 미국 가수 패티 페이지와 같은
명가수가 되고 싶다는 뜻에서 지은 것이다.
서울 중앙여고에 재학 중일 때 배구선수와 수영선수로 활약하기도 하였으며
창(唱)에도 대단한 자질을 지녀 입문 6개월 만에 ‘심청가’를 완창 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녀가 여고를 졸업하던 1958년은 우리 가요계에 커다란 행운이 찾아든 해였다.
미8군 전문 연예인 공급업체인 화양프로덕션에 김혜자라는 예비숙녀가 찾아왔다.
그녀의 노래를 들은 김영순(베니 김) 전무는 눈이 화등잔만 해져 즉석에서 그녀를 채용했다.
보석을 캐내는 순간이었다.
린다 김이란 예명으로 가수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얼마 뒤 김 전무로부터 미국가수 페티 페이지처럼
세계적 스타가 되라는 격려와 함께 페티 김이란 이름을 선사 받는다.
국내최고의 무대에만 섰던 페티 김은 음반을 발표하기도 전에
일본 NET-TV로부터 초청을 받아 일본순회공연 길에 올라 화제를 집중시켰다.
그 후 미국에서의 성공담, 길옥윤과의 결혼, 앙드레 김과의 패션쇼 등
숱한 화제를 뿌리며 80을 바라보는 현재까지 정상의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 10월 26일 데뷔 55주년 기념 콘서트를 끝으로 은퇴하였다)
♣머무시는 동안 즐거우셨으면 합니다♣
★一片丹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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