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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옛노래

♬외로운 街路燈(1939) / 黃琴心♬

♬외로운 街路燈(1939) / 黃琴心♬
blog.daum.net/shs7741 一片丹心
  
    ♬외로운 街路燈(1939) / 黃琴心♬ (이부풍 작사/전수린 작곡) 1.♬ 비오는 거리에서 외로운 거리에서 울리고 떠나간 그 옛날을 내 어이 잊지 못하나 밤도 깊은 이 거리에 희미한 가로등이여 사랑에 병든 내 마음속을 너 마저 울려 주느냐 2.♬ 가버린 옛 생각이 야속한 옛 생각이 거리에 시드는 가슴속을 왜이리 아프게하나 길모퉁이 외로이 선 서글픈 가로등이여 눈물에 피는 한 송이 꽃은 갈 곳이 어느편이냐 3.♬ 희미한 등불 밑에 외로운 등불 밑에 울리고 떠나간 그 사람을 내 어이 잊지 못하나 꿈도 짙은 이 거리에 비젖는 가로등이여 이별도 많은 내 가슴 속을 한없이 울려주느냐 이부풍의 "외로운 街路燈" 1937년도 저물어 가는 겨울 이날따라 비는 스산하게 뿌렸다 작사가 이부풍(본명 박노흥)은 한잔 술에 기분 좋게 취해 약간 비틀대는 걸음으로 명동을 걸어 나왔다 밤은 이미 깊어 있었다 그는 이날 서민호와 함께 창설한 ‘빅다 가극단’의 기념 행사에 참석한 후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가 명월관 앞을 지나는데 골목길 가로등 밑에서 웬 여인이 우산을 받쳐 든 채 서 있었다 그 여인은 명월관을 나오는 손님들의 얼굴을 일일이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이부풍은 이날은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다음날 밤에도 이부풍은 가로등 밑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여인을 보자 뭔가 ‘사연이 있는 여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그 다음 다음날도 그 여인은 그곳에 있었다 이날 밤 이부풍은 그 여인에게 다가갔다. “저, 결례되는 말입니다만 매일 저녁 왜 이 자리에 계신지?” 그러나 여인은 말이 없었다 그저 쓸쓸한 미소만 띨 뿐이었다 가까이서 본 여인은 젊었다 갸름하면서도 우수 띤 얼굴은 청초했다 가로등 밑의 여인은 처연하리만큼 아름다웠다. 이부풍이 용기를 내 다음날 낮에 한번 만나줄 것을 간청했다 여인은 그러나 얼굴만 붉힐 뿐 처음에는 거절했다 이부풍이 자신이 작가라는 걸 밝히자 그제야 여인은 응해 주었다. 이 여인은 이부풍의 짐작대로 깊은 사연이 있었다 여인은 기생이었다 가난한 애인의 학비를 대주기 위해 여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잠시 화류계에 몸을 던진 것이다. 하지만 정절만은 수많은 유혹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지켰다 애인과는 장래를 약속한 사이였기 때문 여인의 헌신으로 애인은 일본 와세다대 법과를 나와 고시에 합격해 검사가 됐다 그러나 정작 출세를 한 애인은 이제 와서 여인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기생이 아니라도 주위에 여인들은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처음엔 바쁘다는 핑계를 대다 나중에는 노골적으로 모든 것을 과거사로 돌리자는 거였다. 그러나 여인은 애인을 단념하기엔 이미 늦었다 몹쓸 게 情 거기다 이 여인의 뱃속에는 애인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애인에게 알리기 위해 저녁마다 여인은 명월관 가로등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검사가 된 애인은 이곳을 자주 츨입한다기에. 이제 여인은 애인과 결혼은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먼발치로라도 애인의 그리운 얼굴만은 보고 싶었다 하지만 검사가 돼 있는 애인에게 공개적으로 불쑥 다가가기엔 이목도 있고 해서 그냥 애인과 마주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이는 제게 안 와도 좋아요 제겐 이제 귀여운 우리 아기가 태어날 테니까요 그래서 이 아이를 위해서도 이 사실을 그이에게 알려야 한다는 게 제 심정입니다.” 이부풍은 이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련한 여인을 위해 노래시를 쓴다. 노래시를 쓰는 그의 손이 분노에 못 이겨 파르르 떨렸다. ================================================================= 황금심(黃琴心■본명 황금동)은 1930년대 일제시대부터 1960년대까지 활동한 대표적인 트로트 여가수다. 이난영과 같은 스타일인 미성으로 서민 삶의 애환을 구성지게 노래했다. 특히 그는 트로트 뿐 아니라 당대의 트로트가수와 달리 신(新)민요도 잘 불러 한때 민요의 여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1934년 '외로운 가로등'으로 데뷔하면서 이난영 신카나리아 장세정 등 당대 톱 여가수와 함께 트로트 여가수 1세대를 이끌었다. '외로운 가로등'은 1930년대에는 별로 없던 블루스스타일을 취했으며 1999년 인기를 누렸던 MBC 드라마 '왕초'에 삽입되어 신세대들의 귀에도 익은 곡이 됐다. 1935년 최대 히트곡인 '알뜰한 당신'을 내놓으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 곡은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여성이 적극적으로 남자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노래로 화제를 모았다. 대부분의 가수처럼 광복을 전후하여 '조선악극단' 등을 통해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장르인 악극무대에서 맹활약했다. 김승호 허장강 배삼룡 최남현씨 등이 당시 황씨와 악극을 개척했던 악극 첫 세대 인물로 꼽힌다. 이후 1952년 '삼다도 소식', 1957년 '처녀총각 뽕따러 가세', 1958년 '한양낭군' 1959년 '장희빈' 등 꾸준히 히트곡을 내놓았다. 1962년의 '성화가 났네', 1963년 '햇빛 없는 그림자'도 빼놓을 수 없는 히트곡이다. 이 가운데 '삼다도 소식' '처녀총각 뽕따러 가세' 등은 '남도 신(新)아리랑' '무등산처녀' 등과 함께 신(新)민요였다. 그의 남편은 '타향살이'로 이름을 떨친 고복수씨로 1972년 타계했다. 당시 고복수 황금심 커플은 드문 남녀정상이 결합한 스타커플로 엄청난 화제를 뿌렸다. 황금심은 그러나 남편과 사별한 후에는 생계를 위해 밤무대에 출연하는 등 어려운 나날을 보냈으며 1997년 사업에 실패하면서는 파킨슨병으로 쓰러져 투병에 들어갔다. 그의 투병기는 1999년 KBS 2TV '영상기록 24시'에서 방송돼 팬들의 안타까움을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2001년 7월30일 사망했다. 남편 고복수씨는 물론 집안전체가 음악인들로 3남2녀의 자녀 중 장남 고영준씨는 현역 가수로 뛰고있으며 막내 고병준씨는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황금심은 국내 대중음악계에 기여한 공로로 1992년 문화훈장 옥관장을 수상했다.
♣머무시는 동안 즐거우셨으면 합니다♣ ★一片丹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