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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옛노래

♬無情/손금홍♬

    ♬無情/손금홍♬ (전수린 작사/전수린 작곡) 1. 오락가락 무심타 쓸쓸한 세상 누를 믿고 산단 말요 누구를 믿어요 2. 울며울며 느끼며 임을 안고서 하늘 두고 맺인 언약 연기와 같고나 3. 믿지못할 사랑을 믿었던 죄로 상한 가슴 홀로 안고 덧없이 헤매 4. 탄식한다 가신 님 올 리 없건만 님이 보친 사랑이라 잊을 길 없고나 손금홍은 대정권번(大正券番) 기생이며 여배우이자 ·성악가(유행가)였다.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1918)에 의하면 서울소리의 여류명창이었고, 빅타음반에 유행가 21곡을 취입하였다. 1932~1934년 "개성난봉가", "공명가"(孔明歌)"", "관산융마(關山戎馬)"를 포함한 20여 곡의 민요를 방송하기 위해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였다. 김진명(金振鳴)ㅏ·이병우(李炳祐)와 함께 일본 빅타관현악단 반주로 취입한 "가을달", "고향 일흔(잃은) 갈매기", "그리운 피리소리"를 비롯해 20여 곡의 유행가는 일본 빅타음반에 전한다. 1930년대 "박연폭포"·,"한강수타령"(漢江水打令)", "사발가" 등 경기민요를 음반에 취입하였다. 1934년 전수린(全壽麟)이 그녀에게 준 자작곡 "무정"을 불러 유행거가수로 데뷔했고,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출연해 전수린 작곡의 "낙화암", "그대 오는 거리".·"꽃각시 설움", "상사타령"과 김교성(金敎聲) 작곡의 "님 오실 거리" 등을 방송했다. 데뷔곡 "무정"은 SP "무정(손금홍) / 베짜는 처녀(이은파李銀波)" (1934.09 빅타레코드 V 49305)에 실려 발표되었다. 손금홍은 "포리돌·레코드"에서"무정(無情, 全壽麟 작사·작곡)"을 취입, 히트시켜 명성을 날렸다. 기생들의 외로운 신세를 한탄하는 가사의 이 노래는 당시 장안기생의 주제가가 되었다. 그런데 이 노래의 히트이면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화신(和信) 자리에 있던 한창(韓昌)빌딩의 주인 한(韓)모씨가 이 "무정(無情)"의 음반이 나오는대로 매점(買占)했다는 것. 수천장씩 나오는대로 한(韓)씨는 사들여 창고에 넣고 음반사는 좋아라고 자꾸 찍어내어 결국 한 사람 상대의 "베스트·셀러"가 된 셈이다. 어리석은 장사 속셈이었다는 설도 있고 한(韓)씨가 손금홍(孫錦紅)을 밀어주는 방편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어쨌든 그 인연으로 손(孫)은 한(韓)씨의 애인이 됐다. 금홍은 또한 시인 이상의 애인으로 이상이 1933년 요양차 배천온천에 갔다가 만난 기생이기도 하다. 종로 1가에 "제비다방"을 개업할 때 마담으로 앉힌 인물로 이상의 첫 애인이다. 이상의 소설 "날개"에 등장하는 "연심"이며 소설 "봉별기"에는 실명 "금홍"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금홍은 1935년 떠났고 이상은 제비다방을 하면서 만난 권순옥을 4년 간 쫓아다니지만 권순옥마저 다른 남자와 결혼하자 변동림과 동거하기 시작했으나 1937년 요절하였고 변동림은 김향안으로 개명하고 김환기와 재혼한다. 이상의 애인 금홍이 손금홍일까마는 이름이 같은 걸보니 "금홍"이라는 이름의 기생들 사이에서는 인기있는(?) 이름이었던 건 아닌지 생각되기도 한다. 여가수의 선구자가 단연 기생이라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양가집 규수가 가수가 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도 꺼리긴 했지만 그나마 손쉬운 게 기생이었다. 1920년~30년대는 가희 기생의 전성시대였다. 서울에만도 조선권번(朝鮮卷番), 한성권번(漢城卷番) 등 많은 권번에 2천여 명의 기생이 집결하고 있었다. 가무의 본고장이 바로 기생방이고 기생의 노래가 바로 대중가요 "신민요"였다. 이래서 레코드사는 우선 손쉬운 기생들 가운데서 가수를 찾았던 것이다. 기생 출신의 가수로 이름을 날린 건 선우일선(鮮于一扇), 왕수복(王壽福), 이은파(李銀波), 이화자(李花子), 김복희(金福姬), 김운선(金雲仙), 손금홍(孫錦紅). 특히 평양명기 선우일선(鮮于一扇)과 경기도 부평(富平)의 이화자(李花子)의 인기는 대단했다. 선우일선(鮮于一扇)은 "꽃을 잡고", "능수버들"(모두 金敎聲 작곡)과 형석기(刑奭基) 작곡의"조선팔경"을 히트시켰다. 선우일선(鮮于一扇)의 이 "조선팔경(朝鮮八景)"은 지금까지도 애창되고 있으니까 반세기를 내려오는 초기의 고전 유행가다. 아름다운 조국의 찬가이자 그 때의 망국한(亡國恨)을 달랜 구성진 노래다. 또 한사람 인기 기생가수에 왕수복(王壽福)이 있다. 왕(王)도 선우일선(鮮于一扇)과 마찬가지로 평양기생이었다. 선우일선(鮮于一扇)은 목소리가 곱고 절대적이었지만 얌전하고 수동적이어서 끝내 기생의 자리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왕수복(王壽福)은 달랐다. 그는 야심이 있고 활동적이었다. 수완이 좋아서 부호, 한량들은 마음대로 움직였다. "능수버들(金敎聲 작곡)"이 히트하자 그는 당시의 재벌 박(朴)모씨를 움직여 동경(東京) 유학까지도 할 수 있었다 비슷한 경우가 손금홍(孫錦紅)이다. ==================================================== 1959년 황금심이 리메이크 한다. 추미림 개사/전수린 작곡/노래 황금심 "무정" 1. 오락가락 무심타 쓸쓸한 세상 누굴 믿고 산단 말요 누구를 믿어요 2. 믿지 못할 사랑을 믿었던 죄로 병든 가슴 움켜 안고 끝없이 헤메네 3. 울며 불며 느끼며 님을 안고서 선을 두고 맺은 언약 연기와 같구나 ==================================================== 그리고 고운봉도 리발이벌 했었다. 추미림 개사/전수린 작곡/노래 고운봉 "무정" ==================================================== 송금홍은 경서도 소리를 잘하여 음반으로 남긴다. 노래 손흥금 "노래가락" 사람의 인생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 천하디 천하다고 치부되어 한탄과 한숨으로 인생을 자책하던 기생은 그들도 꺼려하던 딴딴라 대중가수가 되어 한순간에 인기인이 되고 돈방석에 앉기도 하고, 그 일을 발판으로 인생을 바꾸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여 성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편 더욱 자책하고 피폐한 삶을 살다 외롭고 쓸쓸히 가는 사람도 있었으니 삶이란 과연...
♣머무시는 동안 즐거우셨으면 합니다♣ ★一片丹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