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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이자연·심수봉

♬울면서 후회하네/주현미♬

    ♬울면서 후회하네/주현미♬ (하늘이 작사/안치행 작곡) (1991.주현미 1집 / 오아시스 레코드 OL-2628) 1. 순정을 다 바쳐서 믿었던 그 사람. 사랑의 낙서만 남기고 떠나갔네. 사랑이 이렇게도 괴로운 줄 왜 몰랐을까? 빼앗긴 내 마음을 찾을 수도 없으면서 울면서 후회하네. 아~ 스쳐만 지나갈 걸 그냥 그대로 있을 걸 당신 앞에 머뭇거린 내가 미워서 울면서 후회하네. 2. 이 마음 다 바쳐서 믿었던 그 사람 사랑의 상처만 남기고 떠나갔네. 슬픔이 이렇게도 아픈 것을 왜 몰랐던가? 상처 난 내 마음을 달랠 수도 없으면서 울면서 후회하네. 아~ 차라리 스칠 것을 쳐다보지 말 것을 당신 앞에 서성거린 내가 미워서 울면서 후회하네. SIDE - 1 1.비내리는 영동교 2.지울수 없는 정 3.미련의 부르스 4.만나서 반가운데 5.바보같은 여자 6.잊으리 SIDE - 2 1.울면서 후회하네 2.그 정을 어이해요 3.길면 3년 짧으면 1년 4.모국의 팔월 한가위 5.노들강변 뱃사공 6.여수처녀 ■ 주현미(周炫美) : 1961년 광주 광역시 출생이며, 그녀는 대만(Taiwan)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4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한국 화교(華僑) 2세 출신이다. 대표곡으로 울면서 후회하네(1985). 비내리는 영동교(1985). 신사동 그 사람(1988). 짝사랑(1989). 잠깐만(1990).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revival)(1997). 정말 좋았네(2003). 사랑가(2003). 댄서의 순정(revival)(2006). 비내리는 영동교(1985) 등이 있다. 그녀의 부친 주금부는 한의사였기 때문에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한약재 사업을 하였고, 그녀는 자연스레 의학에 관한 학문을 접했다. 중학교 2학년때 기념 음반 ‘고향의 품에’를 발표했으며, 중앙 대학교 약학과에 다닐 무렵 1981년 MBC 강변 가요제에 약대 음악 그룹 진생 라딕스(ginseng radix)의 보컬로 출전하여 입상하였다. 1984년,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藥師) 자격증을 취득하였으며, 서울 중구 남산 주위에 한울 약국을 개업하여 약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약사로 활동할 당시 고객에게 주로 민간 요법을 처방하여 그다지 수입을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의 큰 어머니가 1960년대의 명곡 댄서의 순정(1956)을 부른 오리지널 가수 박신자(朴信子)란 사실도 흥미롭다. 약사로 활동하던 당시 작곡가 정종택의 권유로 김준규와 함께 메들리 음반 ‘쌍쌍 파티’를 취입하고 ‘쌍쌍 파티’의 히트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이를 계기로 1985년에 정규 음반을 발표하고 정식으로 가수에 데뷔를 하며 국내 최초 약사(藥師) 가수로 화제가 되었다. 그녀는 가수의 직업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데뷔 후에도 약 9개월간은 자신의 약국을 계속 운영했다. 첫 음반의 타이틀곡 비내리는 영동교(1985)가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 신인상까지 받았지만 그녀는 가수의 길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 보았다. 하지만 눈물의 부르스(1986). 신사동 그 사람(1988)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10대 가수상과 최우수 가수상을 차지하며 트로트 가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1988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이자 락그룹 엑시트의 보컬이었던 임동신과 결혼하였고 1989년에 대만 국적에서 한국 국적(國籍)으로 취득하였다. 결혼 후, 1988년 가수 대상을 비롯한 주요 가요상을 휩쓸었다. 1990년 아시아 가수로서 처음으로 국제 가요제 연맹에서 시상하는 디스턴트 어코드(distant accord)상을 수상하였다. 1990년대 락(Rock). 발라드라는 장르가 한국 가요를 강타하기 시작하면서 정통 트로트를 부르던 가수들에게는 시련에 부딪혔고 그녀도 활동 비중이 줄었다. 1993년 본격적으로 일본 음반사와 계약을 맺어 일본에도 진출하였고, 그 이후, 1994년, 둘째 아이를 낳고 7년 동안 아이들을 키우느라 경기도 과천시 청계산 쪽 전원 주택에서 생활했다. 2000년 ‘러브 레터(2000)’라는 곡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복귀하여 히트했다. 2004년 08월에는 KBS가 평양 모란봉에서 녹화한 ‘평양 노래 자랑’ 편에 남측 가수 대표로 송대관 가수와 함께 출연하기도 하였다. 2010년부터 KBS2 라디오 ‘주현미의 러브 레터’의 DJ로 활동했으며, 2010년 문화 예술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머무시는 동안 즐거우셨으면 합니다♣ ★一片丹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