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 2 1. 에밀레종 (이미자) 2. 항구의 무명초 (차은희) 3. 추억의 호수 (박재란) 4. 말하기 곤란해요 (황금심)
조두형(趙斗衡) 유괴사건
1962년 9월 10일 오후3시40분경 서울 마포구 조병옥씨의 큰아들 두형군이 실종됐다.
두형군은 이날 동네 친구들과 집앞에서 놀던 중
"아저씨 따라가면 맛있는 과자를 사주겠다"고 속이는
20대 청년 두명을 따라간 후 소식이 없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대통령권한대행인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담화를 발표
"두형군을 하루속히 집으로 보내줄 것"을 당부했다.
경찰이 두형군의 실종사건을 수사하는 가운데 모두 8차례의 협박편지가 왔다.
첫 협박편지는 9월 13일 10만원을 삼각지로 가져오라는 내용이었고
여섯 번째는 9월 15일 돈을 보자기에 싸서
도봉구 장위동 철로변 91호 전주 밑에 묻으라는 내용이었다.
여덟 번째는 20만원을 요구하며 자신이 보낸 사람에게
20만원을 주면 두형이를 10분후에 돌려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범인은 20만원의 몸값만 갖고 도주했고 경찰은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다.
더욱이 이 사건에는 신문방송, 내무부, 체신부, 문교부, 한국전력,
여성단체 등이 총동원되어 조두형 찾기를 벌였고,
수사 전담 경찰관만도 300여명에 이르렀으나
끝내 생사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여보세요 제발 애원해요
아무것도 모르는 그 천진한 어린것을
제 품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네~~
세상의 부모님들은 모두 마찬가지가 아니겠어요
정말 정말 애원이에요
이아이는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1.♬
두형아 내동생아 너 있는곳 어데냐
너를 잃은 부모님은 잠못들고 운단다
동에 가도 네가 없고 서에 가도 너없으니
낯선사람 정을붙여 엄마생각 잊었느냐
2.♬
고사리 어린손아 노래하던 재롱아
너와 함께 놀던 동무 너를 찾아오는데
어느때나 돌아오리 죄도 없는 어린 목숨
애타는 엄마품에 두형이를 돌려줘요
두형이 유괴사건이 발생한지 1년이 되었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아세아 레코드회사 사장인 최치수씨가 착안하여
작사가인 반야월씨와 상의 끝에 두형이 찾기에 보탬이 될런지도 모르니
음반을 제작하여 널리보급하는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이말을 들은 반야월씨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것도 좋은 생각이라고 답변을 하고서
두형이를 돌려주세요란 제목을 붙여 작사를 했다.
그리고 작곡가를 누구를 시켜야 할가하고 두 사람은 상의 끝에
당시 작곡가이면서도 편곡을 주로 많이 하던,
지금은 고인이 된 라음파가 어떠냐고 의논 끝에 의견을 같이했다.
라음파가 슬픈 곡조는 잘 쓰는 편이니 라음파로 하기로 합의를 하고
반야월씨는 작사를 하여 라음파에게 가사를 주면서
당신이 두형이 유괴사건을 잘알고 있으니
가사 내용을 잘 생각하여 듣는 사람이 감동,
마음을 움직이도록 연구해 곡을 쓰라고 당부했다.
그 곡을 받은 라음파는 반야월씨가 당부한 바를 잊지않고
심혈을 기울여 곡을 만들었다.
라음파는 만든 곡을 최치수 사장과 반야월씨가 있는
아세아 레코드회사에 와서 들려주었다.
두 사람은 라음파가 들려주는 노래를 조용이 듣고 있다가
이구동성으로 잘 만들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노래는 이렇게 해서 잘만들어 졌지만
노래를 부를 가수를 누구로 선정하느냐가 또 문제였다.
이렇게 세 사람이 한참을 연구했으나 답을 얻지 못하고 고민들을 했다.
이렇게 고민하기를 몇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중 이미자가 어떨런지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당시 가수 이미자씨는 데뷔한지 얼마데지 안됐을 때다.
그러면서도 인기가 서서이 올라가는 가수였다.
지금으로 표현한다면 뜨는 가수였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애수적인 목소리였다.
그러니 이미자에게 잘 맞을거라고 생각들을 하고
이미자를 불러다가 연습을 시켜봤다.
그랬더니 노래가사나 곡조가 딱맞아 떨어졌다.
이렇게해서 최치수 사장과 반야월씨 라음파씨 이 세 사람은 이미자씨로 결정하고,
즉시 연습에 들어가면서 빠른 속도로 레코드 취입을 하게됐다.
레코드가 발매되기가 바쁘게 레코드는 각 대리점을 통해
삽시간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판매가 됐다.
이 때에 정부에서도 두형이 찾기운동에 적극 협조를 하였다.
그래서 각 방송국에 협조를 요청하여 두형를 돌려줘요란 노래를 방송 해줄 것을 당부,
매일 라디오 방송으로 이 노래가 퍼져나갔다.
그러다보니 이미자씨의 슬픈 목소리는 듣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는데 좋은 소식은 들리질 않았다.
이렇게 전국민이 두형이를 찾고자 애를 쓰건만
유괴된 두형이는 찾을길이 더욱 막막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이 노래를 들을 적마다 애타는 두형이 부모를 생각하여
모두가 한마음으로 같이슬퍼했다.
그 것뿐이 아니다. 두형이를 돌려줘요
이 노래는 노래가사 속에서 흘러나오는 대사가 있다.
두형이 어머니 입장에서 하는 대사다.
여보세요 제발 애원이에요.
아무 것도 모르는 그 천진한 어린것을 제품에 꼭 돌려보내주세요. 네.
부모 마음은 모두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정말 정말 애원이에요. 네.
이렇게 성우의 떨리면서 흐느끼는 목소리로 대사가 흐른다.
이 대사에 듣는 사람들은 울지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노래로서 감동을 시켜 두형이를 보내달라고 애원을 하건만
이 유괴를 한 사람들은 이 노래를 들었는지 아니면 못들었는지 아무런 대꾸가 없다.
사람이라면 이미자의 슬픈 목소리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이미자씨의 노래에 다들 우는데 어찌하여 유괴를 한 사람들은
감정도 눈물도 없단 말인가.
아니 그들은 자식도 없단 말인가.
노래 예술은 짧은 시간이지만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웃기는 예술이다.
그렇기에 이 노래를 듣고 우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유괴범도 이 노래를 듣고 감동하여 두형이를 돌려줄까 하는
애타는 심정에서 예술가까지 두형이 찾기에 애를 썼것만
이렇게도 냉혈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한 생각이 든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정부에서도 두형이 찾기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고,
전국민이 하나가 되어 찾았으나 끝내 두형이는 찾질 못했다.
여기서 하나 강조할 것은 두형이를 찾고자 노래까지 만들어서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을 이용하여 애를 썼지만
그도 소용이 없는 걸로 봐서는 두형이를 유괴한 범인은
참으로 잔인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서 당시에 두형이를 찾는 언론기관의 상황을 살펴보자.
극장에서 본 영화를 하기전에 예고편이 방영되며
이어서 대한뉴스라는 삭막한 영화가 상영이 되고,
이어서 본 영화가 상영된다.
그 때에 대한뉴스에서까지 이미자씨의 슬픈목소리로
두형이를 돌려줘요를 들려준다.
이미자씨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영화를 보러왔던 관객들은
이미자의 흐느끼는 목소리에 본 영화도 보기 전에 먼저 울어버리는 일이 많았다.
이렇케까지 노력을 했어도 두형이를 찾질 못했다.
이것 뿐이 아니다. 당시 경향신문에는 이러한 기사가 실려있었다.
어릴 때 양친을잃고 14년간이나 철도검사원 노릇을 하다가
10년 전부터 레코드 업계에 진출한 최치수 사장은
[1] 시골에는 유성기 있는 집에 사람이 많이 모이고
[2] 엠프 시설이 광범이하고
[3]레코드의 지방보급이 빠르다는점 등에 착안하여
레코드 업자들도 거국적인 이 운동에 참여할 길을 찾은 것이
마침내 두형이 찾기 노래를 레코드 제작하게 되었다 한다.
인간의 착한 마음씨를 예술로서 되찾아보자는 이 노래는
오는 25일 취입이 완료된다.
이상은 당시 경향신문의 기사를 소개한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렇게 전국민이 두형이 찾기 운동을 거국적으로 폈으나
두형이는 끝내 돌아오지않고,
아니 찾질 못하고 노래만 남아 국민들이 애창하며 울곤했다.
아니 필자도 술만 한 잔 하고 취하면 두형이 부모의 애타는 심정을 생각하며
이 노래를 부르면서 울어본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아니 이 노래를 작사한 반야월씨도 이 노래를 듣고 울고
이 노래를 작곡한 라음파도 이 노래를 들으면서 울곤했다.
그렇게 애타게 찾던 두형이는 찾질 못하고 애타게 찾던 그의 노래만 남아 있으니
이 글을 쓰는 필자의 심정은 씁쓸하기 만 하고 웬지 가슴이 뭉클하니
눈물이 곧 터질 것만 같다
지금 두형이가 살아 있다면 40대 중반이 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