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山)/최병구♬
(김소월 시)
1.♬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 산골
영(嶺) 넘어 가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리는 가기도 했소.
(대사)
불귀(不歸), 불귀(不歸), 다시 불귀(不歸).
삼수갑산(三水甲山)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 년 정분을 못 잊겠네.
♬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노래로 듣는 소월시집 2LP's
신세기 2매, 1968년, 서영은 작곡집
1집
SIDE=A
1. 꿈(최희준
2. 왕십리(봉봉사중창단)
3. 가을 아침에(리타김)
4. 잊었던 맘(최희준)
5. 팔벼개 노래(봉봉사중창단)
SIDE=B
1. 무덤(리타김)
2. 산(최병구)
3. 못 잊어(강명춘)
4. 춘향과 이도령(봉봉사중충단/이씨스터즈)
5. 만나려는 심사(강명춘)
6. 바다(최희준)
2집
SIDE=A
1. 부모(유주용)
2. 진달래 꽃(최정자)
3. 옛 이야기(이씨스터즈)
4. 개여울의 노래(한상일)
5. 분 얼굴(최병구)
SIDE=B
1. 님에게(최정자)
2. 님과 벗(유주용)
3. 널(이씨스터즈)
4. 생과 사(한상일)
5. 기억(최병구)
이 시에서는 시적 화자와 오리나무 위에 새가 비슷한 정황에 놓여 있다.
오리나무 위에서 우는 새는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깊은 산이 그리워 돌아 가고자 한다.
그러나 높은 고개를 넘어야 만 갈 수 있기에 가지 못하고 울고 있다.
시적 화자도 정든 삼수갑산을 떠나 있으나,
고향이나 다름없는 그곳을 못 잊어 마음속으로 울고 있다.
시적 화자도 정든 삼수갑산을 떠나 있으나,
고향이나 다름없는 그곳을 못잊어 마음속으로 울고 있다.
첩첩이 쌓인 눈길을 칠팔십 리나 걷지 만
오히려 마음은 십오 년의 정분을 차마 못 잊어 뒷걸음쳐서 되돌아 간다.
그러나 삼수갑산을 가는 길은 고갯길로 뻗어 있고,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이다.
'불귀,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이 시에서 영(嶺)은 넘을 수 없는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넘어 가려는 데
시적 화자의 슬픔이 있고 한이 있다.
고개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깊은 산 속으로 날아가지 못하는 산새와,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삼수갑산이기에
지나온 세월의 정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주인공의 심정이 합치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이 시에서는 자연에 대한 동경과 현실 생활에 대한 미련이 어우러져
화자가 겪는 내면의 갈등을 이룬다.
이 시에서 특징적인 것은 시의 리듬이다.
'위에서', '울다', '왜 우노', '그래서 울지'에서 드러나는
'우'음의 연속은 운의 효과를 드러낸 것이다.
또한, '산에는 / 오는 눈 / 들에는 / 녹는 눈'의 대구 형식은 민요시의
특징인 반복적 리듬감을 보인 것이다
김소월 [金素月] 한국 시인
태어난 때 1902. 8. 6
태어난 곳 평북 구성
죽은 때 1934. 12. 24
죽은 곳 평북 곽산.
소속 국가 한국
직업 시인
1902. 8. 6 평북 구성~ 1934. 12. 24 평북 곽산.
시인.
김소월
본관은 공주. 본명은 정식(廷湜). 전통적인 한(恨)의 정서를 여성 화자를 통해 보여주었고,
향토적 소재와 설화적 내용을 민요적 기법으로 노래하였다.
아버지 성도(性燾)와 어머니 장경숙(張景淑)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외가에서 태어나 백일이 지난 뒤,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남서동 본댁으로 돌아왔다.
2세 때 아버지가 철도를 설치하던 일본인에게 폭행당해
정신이상이 되자 할아버지가 그를 돌보았다.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고, 숙모 계희영에게
〈심청전〉·〈장화홍련전〉등의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1915년 오산학교 중학부에 입학, 1916년에는 홍단실(洪丹實)과 결혼했다.
3·1운동 직후 오산학교가 잠시 문을 닫게 되자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해 졸업했다.
그가 오산학교에 다닐 때에는 조만식이 교장,
서춘·이돈화·김억이 교사로 있었는데, 김억에게 시적 재능을 인정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23년 도쿄상과대학[東京商科大學]에 입학했으나,
9월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학교를 그만두고 귀국했다.
고향으로 돌아가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광산일을 돕다가
1924년〈진달래 꽃〉의 무대인 영변을 잠깐 다녀왔다.
김동인·김찬영·임장화 등과 〈영대 靈臺〉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나도향과 친하게 지냈다.
광산일이 실패하자 처가가 있는 구성군으로 이사했다.
땅을 팔아 동아일보사 지국을 경영했으나 실패했다.
그뒤 생활이 어려워져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술만 마시다가,
1934년 32세 때 곽산에서 음독자살했다.
1968년 3월 한국일보사에서 남산에 그의 시비를 세웠다.
♣머무시는 동안 즐거우셨으면 합니다♣
★一片丹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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