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日本 演歌)Music

♬HARUMI MIYAKO(都はるみ) 3大 힛트송♬

一片丹心 靑岩 2019. 3. 3. 20:26
♬淚の連絡船/HARUMI MIYAKO(都はるみ)♬
blog.daum.net/shs7741 一片丹心
  
    ♬淚の連絡船/HARUMI MIYAKO(都はるみ)♬ 1.♬ いつも群れ飛ぶ かもめさえ 항상 무리지어 나는 갈매기조차 とうに忘れた 恋なのに 벌써 잊은 사랑인데도 今夜も 汽笛が 汽笛が 汽笛が 오늘 밤도 기적이 기적이 기적이 独りぽっちで 泣いている 혼자 울고 있다 忘れられない 私がばかね 잊을 수 없는 내가 바보네요 連絡船の 着く港 연락선이 도착하는 항구 2.♬ きっとくるよの 気休めは 꼭 올께가 위안은 旅のお方の 口ぐせか 여행하시는 그 분의 입버릇인가 今夜も 汽笛が 汽笛が 汽笛が 오늘 밤도 기적이 기적이 기적이 風の便りを 待てと言う 바람결의 소식을 기다리라고 한다 たった一夜の 思い出なのに 단 하룻밤의 추억인데도 連絡船の 着く港 연락선이 도착하는 항구 3.♬ 船はいつかは 帰るけど 배는 언젠가는 돌아오지만 待てど戻らぬ 人もあろ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 今夜も 汽笛が 汽笛が 汽笛が 오늘 밤도 기적이 기적이 기적이 暗い波間で 泣きじゃくる 어두운 물결에 흐느껴 운다 泣けばちるちる 涙のつぶが 울면 떨어지는 눈물 방울이 連絡船の 着く港 연락선이 도착하는 항구 ======================================================= 港町/都はるみ (미야코 하루미) (LP) ======================================================= 北の宿から(키타노 야도카라=북쪽 숙소에서)/都はるみ (미야코 하루미) 北の宿から (기타노야도가라=북쪽의 숙소에서) 이노래는 일본엔카의 간판가수로 불리는 재일동포 미야코 하루미(본명;이춘미)가 1976년 12월에 발표하여 크게 인기를 모은 엔카다. 눈내리는 북쪽의 온천에 숙소를 잡아놓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여인의 쓸쓸한 심정을 담은 노래로 미야코 하루미는 이듬해 동명 타이틀의 영화에 출연한바 있다. 1.♬ あなた變りは ないですか 日每寒さが つのります 아나타카와리와 나이데스까 히고토사무사가 츠노리마스 그대 별고 없나요 매일추위가 점점 더해져가는군요 着てはもらえぬ セ-タ-を 寒さこらえて編んでます 키테와 모라에누 세-타-오 사무사 코라에테 안데마스 입어주지도 않을 세타를 추위를 참아내며 뜨고 있어요 女ごころの 未練でしょう あなたこいしい 北の宿 온나고코로노 미렌데쇼오 아나타 코이시이 키타노야도 여자의 마음 미련이겠죠 당신이 그리운 북녁의 숙소 2.♬ 吹雪まじりに 汽車の音 すすり泣くよに きこえます 후부키마지리니 키샤노오토 스스리 나쿠요니 키코에마스 눈보라 속에 섞여 기차소리가 흐느껴 우는듯 들려오네요 お酒ならべて ただひとり 淚唄など 歌います 오사케 나라베테 타다히토리 나미다 우타나도 우타이마스 술잔을 늘어 놓고 외로이 혼자 눈물의 노래들을 부르고 있어요 女ごころの 未練でしょう あなたこいしい 北の宿 온나고코로노 미렌데쇼오 아나타 코이시이 키타노야도 여자의 마음 미련이겠죠 당신이 그리운 북녁의 숙소 3.♬ あなた死んでも いいですか 胸がしんしん泣いてます 아나타신데모 이이데스카 무네가 신신 나이테마스 당신, 죽어도 좋은가요 가슴이 저리도록 울고 있어요 窓にうつして 寢化粧を しても 心は 晴れません 마도니우쯔시테 네케쇼우오 시테모 코코로와 하레마센 창문을 보면서 밤화장을 해봐도 마음은 밝아지지 않네요 女ごころの 未練でしょう あなたこいしい 北の宿 온나고코로노 미렌데쇼오 아나타 코이시이 키타노야도 여자의 마음 미련이겠죠 당신이 그리운 북녁의 숙소 ======================================================= 1964년 미야꼬 하루미는 1963 년에 콜롬비아 전국 콩쿨에서 우승 1964 년에 고마루노꼬도요" 로 데뷰 그때 나이 열여섯살에 발매한 "앙꼬 쓰바끼와 고이노하나"가 대힛트. 레코-드 대상 신인상을 받음 アンコ椿は 戀の花 (안코쓰바키와 코이노하나) 아가씨 동백은 사랑의 꽃 詞:星野哲郞/ 曲:市川昭歌 都はるみ(미야코하루미) 昭和39年(1964年) 1.♬ 밋카 오쿠레노 타요리오 노세테 三日 おくれの 便りを のせて 사흘늦은 편지를 싣고서 후네가 유쿠유쿠 하부미나토 船が 行く行く ハブ港 배는 떠나가네 하브항구 이쿠라 스키데모 아나타와 토오이 いくら 好きでも あなたは 遠い 아무리 좋아해도 당신은 멀어 나미노 카나타헤 잇타 키 波の 彼方へ 行った きり 바다 저편에 가버렸을 뿐 안코타요리와 안코타요리와 アンコ便りは アンコ便りは 아가씨 편지는 아가씨 편지는 아아 카타 타요리 ああ 片 便り 아아 한쪽만의 편지 미하라야마카라 후키다스 케무리 三原山から 吹き出す 煙 미하라산에서 내뿜는 연기가 키타헤 나비케바 오모이다스 北へ なびけば 思い出す 북으로 나부끼면 생각이나네 호레챠 나라나이 미야코노 히토니 惚れちゃ ならない 都の 人に 반해선 안될 도회의 사람에 요세루 오모이가 히토 모에테 よせる 思いが 燈と もえて 사모하는 생각이 불같이 타 올라 안코쓰바키와 안코쓰바키와 アンコ椿は アンコ椿は 아가씨 동백은 아가씨 동백은 아아 스스리 나키 ああ すすり 泣き 아아 흐느껴 우네 2.♬ 카제니 히라히라 카스리노 스소가 風に ひらひら かすりの ?が 바람에 팔랑팔랑 비백무늬옷자락이 마에바 하즈카시 쥬우로쿠노 舞えば はずかし 十六の 펄럭이면 부끄러운 이팔청춘의 나가이 쿠로카미 붓쓰리 킷테 長い 黑髮 プッツリ 切って 기-ㄴ 검은 머리 싹둑 잘라서 카에루 카모메니 타쿠시타야 かえる カモメに たくしたや 돌아가는 갈매기에 보내고 싶어 안코쓰보미와 안코쓰보미와 アンコつぼみは アンコつぼみは 아가씨 꽃망울은 아가씨 꽃망울은 아아 코이노 하나 ああ 戀の 花 아아 사랑의 꽃 ====================================================== 大坂しぐれ(오오사카시구레=오사카 늦가을 비)-都はるみ(미야코하루미) 1.♬ ひとりで生きてくなんてできないと 히토리데 이키테쿠난테 데키나이토 나 혼자 살아간다는것 같은건 할수 없다고 泣いてすがればネオンがネオンがしみる 나이테 스가레바 네온가 네온가 시미루 울며 매달리니 네온이, 네온이 비에 젖어 저미네요 北の新地は おもいでばかり 雨もよう 키타노 신치와 오모이데 바카리 아메모요 키타신치(오사카 북쪽의 新 시가지)는 추억뿐.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듯한데 夢もぬれま 유메모누레마스 꿈도 젖는군요 ああ大阪しぐれ 아~ 오오사카시구레 아~ 오사카 늦 가을비 2.♬ ひとつやふたつじゃないの ふるきずは 히도쯔야 후타쯔쟈나이노 후루키즈 하나, 둘이 아니에요. 오랜 기간 내 상처는 噂並木の堂島堂島すずめ 우와사 나미키노 도-지마 도-지마 스즈메 소문난 가로수의 도지마, 도지마의 수다쟁이(인) こんなわたしで いいならあげる何もかも 콘나 와타시데 이이나라 아게루 나니모카모 이런 내가 괜찮다면 드릴게요. 모든 것을 抱いて下さ 다이테쿠다사이 안아주세요 ああ大阪しぐれ 아~ 오오사카시구레 아~ 오사카 늦 가을비 3.♬ しあわせそれとも今は不しあわせ 시아와세 소레도모 이마와 후시아와세 행복한가요? 아니면 지금 불행한가요? 醉ってあなたは曾根崎曾根崎あたり 요테 아나타와 소네자키 소네자키 아타리 술에 취한 당신은 소네자끼, 소네자끼 근처에 있겠지요. つくし足りないわたしが惡いあのひとを 쯔쿠시 타리나이 와타시가 와루이 아노히토오 정성을 다하지 못한 내가 나빠요. 그 사람을 雨よ返して 아메요 카에시테 비여! 돌려다오 ああ大阪しぐれ 아~ 오오사카시구레 아~ 오사카 늦 가을비 大坂しぐれ(오오사카시구레=오사카 늦가을 비)/3MBR(MR) 伴奏曲 都はるみ (미야코 하루미) 1948년 일본 교토 부 교토 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기타무라 하루미(北村春美)이나, 일본의 저널리스트 아리타 요시후(有田芳生)는자신의 저서〈歌屋 都はるみ〉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재일한국인이며, 그녀의 한국 이름은 이춘미(李春美)라고 적고 있다. 교토 시에 있는 라쿠요 종합 고등학교(洛陽総合高等学校)를 다니다가 가수가 되고싶다는 이유로 중퇴하였다. 1964년 《곤란해요 (困ることヨ)》로 데뷔하였으며, 이후 같은 해 발표한 《앙코동백은 사랑의 꽃 (アンコ椿は恋の花》이 히트하면서 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후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일본 가요계를 대표하는 대 스타가 되었다. 1984년 '보통의 아줌마가 되고싶다.(普通のおばさんになりたい。)'는 말을 남기고 NHK 홍백가합전을 끝으로 은퇴하였으나, 1987년 음악 프로듀서로서 활동을 재개하였다. 이후 1989년 NHK 홍백가합전을 통해 가수로 복귀하여 지금에 이른다. NHK 홍백가합전에는 1965년부터 1984년까지, 1989년부터 1997년까지 총 29회 출연했다. 현재 레코드 회사는 콜롬비아 뮤직 엔터테인먼트. 그녀는 독특한 꺾기 창법을 잘 구사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며, 그녀의 독특한 꺾기는 여러 연예인에 의해 성대모사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그녀는 주로 애수(哀愁)가 담긴 곡들을 많이 노래했으며, 이외에도 고향인 교토를 소재로 한 노래들을 취입하기도 하였다. 또한 엔카 이외의 장르의 곡들도 자주 부르기도 한다. 1989년에는 일본에서 데뷔한 김연자의 곡을 프로듀싱 하는 등 후배 양성에 힘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都 はるみ(みやこ はるみ)、미야코 하루미 1948年(昭和23年)2月22日 - )出生 1948년 2월 22일생 日本の女性演歌歌手。 일본 여성 엔카가수 本名・北村 春美(きたむら はるみ)。 본명 기타무라 하루미 京都府京都市生まれ。。 교토부 교토시 출생 부친은 한국인이고 예능을 좋아하는 모친이 하루미 5살부터 일본 무용과 발레를 배우게했다 16살( 1964년) 데뷰했다 미야코 하루미(都 春美)는 아버지 姓氏가 경북성주 李씨이고, 엄마의 姓氏가 都 (미야코) 인 한국인 2세로, 1.5세 교포가수로써 일본 가수를 능가하여 가장 인기가 있었던 "미조라(美空)히바리"를 이어 이름이 알려진 가수의 한명입니다. 우리식 이름으로 한다면 이춘미(李春美)가 되겠지요.. 미야꼬 하루미! 미조라 히바리가 키운 한국계 일본 엔까가수! 그녀의 매력은 고음과 저음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특히 사근 사근 연사배 깍는듯한 저음에서 순식간에 제트기류로 치솟아 이 세상의 모든 비극적인 사랑에 핏빛 장미를 던지는 듯한 고음의 절규는 가히 환상적이다. 미야꼬 하루미는 1948년생으로 16세인 1964년 데뷰이래 현역으로 활동하는 일본 제일의 엔카 가수다. 이러한 명예와 부를 누린 그녀에게도 피를 토할 절규를 해야 할 비극은 있었다. 16 세에 데뷰한 그녀가 모든 일본의 가수상을 휩쓸고 명실공히 여왕으로 등극하던 날........! 닌자같은 일본의 메스콤은 그녀가 한국인의 딸이란 것을 밝히고 방송에서 퇴출(추방)시켜야 한다고 떠들어댄다. 그녀로서는 28세에 처음으로 그것도 타의에 의해서 자신의 뿌리가 한국인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노래도 사랑도 인생도 이때 부터 비틀거린다. 여인의 해협으로 달려가지 않을수 없는 비극으로 치달은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 이종택은 1940년 조국 경상도 땅을 떠나 잠사가 유명한 서부 일본의 어느 마을에 정착한다. 그곳에서 세명의 일본인 잠사공과 같이 일을 하게 되는데, 그러던 중 한여인과 열애에 빠지게 된다. 바로 미야꼬 하루미의 어머니인 것이다. 이종택의 나이 42세, 처녀의 나이 27 때의 일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그녀는 태어난다. 천부적인 목소리를 타고난 것 또한 그의 부모로부터 이어져 온 한스러움의 대 내림이었을까? 열여섯의 처녀 몸으로 방송계에 진출하여 드디어 대망의 가수왕에 등극한다. 그러나, 한국계 2세라는 거대한 시샘과 차별 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결국 1984년 12월! 歸去來란 타이틀로 20주년 기념공연 및 은퇴공연을 하고 현역에서 물러난다. 그러나, 그녀는 수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우리 교포들과 일부 일본펜들의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드디어 펜들의 열열한 성원으로 다시 가요계에 화려하게 복귀하게 된다. 그녀는 더욱 원숙한 모습으로 우리앞에 당당히 섰다. 지금도 그녀는 일본 최고의 엔카가수로 우뚝 서 있다.
♣머무시는 동안 즐거우셨으면 합니다♣ ★一片丹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