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사랑/송민도♬
강사랑 작사 / 나화랑 작곡
1.♬
초록바다 물결우에 황혼이 오면
사랑에 지고새는 서귀포라 슬픔인가
님 떠난 밤부두에 울며불며 새울 때
칠십리 밤하늘에 푸른별도 설드라
2.♬
그리워도 보고파도 아득한 바다
물새도 울며새는 서귀포라 눈물인가
동백꽃 꽃향기에 휘감기는 옛 추억
칠십리 해안선에 서리서리 서린다
3.♬
봄이오면 오신다든 님이었건만
이 봄도 속아넘는 서귀포라 한숨인가
아득한 먼 바다에 오락가락 쌍돛대
칠십리 섬구비를 날 속이고 넘는다
‘나의 탱고’ ‘나 하나의 사랑’ ‘해당화 피는 마을’
‘애수’ ‘내일이면 늦으리’ ‘카츄사의 노래’
등의 노래로 잘 알고 있는 50 년대말 톱스타 송민도(75. 미국 캘리포니아 거주).
그녀는 지금 흰머리의 할머니지만 아직도 팬들은 그녀를 ‘분위기 있는 가수’로 기억한다.
그녀는 클래식컬한 창법의 저음과 세련된 무대 매너로 전화(戰禍)로 상심에 싸인
국민들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가요계 데뷔는 해방후 남하 한
실향민들의 생존 차원에서 이뤄졌다.
그녀의 노래는 특히 대학생 등 젊은층과 인텔리층에서 인기가 있었다.
1923 년 경기도 수원 출신인 송씨는 감리교목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여러곳을
전전하며 평안도 용강에서 소학교를 마쳤고, 이후 이화고녀에 진학했다.
그리고 만주 용정에서 살다가 해방후 남하했다.
교회성가대원, 여학교합창단, 방송국합창단 등에서 활동한 그녀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장기(長技)’인 노래를 불렀으며, 1948년 중앙방송국 전속가수 1기생으로 선발돼
가요계에 정식 데뷔했다.
‘서귀포 사랑’은 송민도가 스타 반열에 있을 때 나온 노래였다.
전쟁후 ‘나의 탱고’로 부동의 스타 자리에 오른 그녀가 이어서 부른 ‘서귀포사랑’ 역시
연달아 ‘자동 히트’를 쳤다. 이후 오랫동안 가요계 스타로 있다가
68 년 베트남전에 참전한 아들의 행방을 찾아 베트남에 가면서 가요계를 떠났다.
다시 미국으로 이민길에 올랐다.
현재 양로원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그녀는 몇 년전 방송국 무대에서
올드팬들에게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무대에 서니 심장이 멎는 것 같았어요. 거의 졸도할 뻔했죠.
하지만 옛 추억때문에 그 큰 무대에서 견뎠어요”
송민도는 60 년대 시민 위안의 밤 행사로 잠깐 제주에 다녀간 일이 있지만
정작 서귀포에는 한 번도 들린 적이 없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올드 팬들 앞에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서귀포에도 한 번 가 보고 싶고요”
아직도 뭍에 사는 사람들의 제주섬에 대한 그리움은 유효한 것일까.
제주섬에 대한 노래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애창되고 있는 것을 보면
틀린 생각은 아닌 듯 하다.
‘서귀포 칠십리’ ‘삼다도 소식’‘서귀포를 아시나요’ 등등은
제주섬에 대한 ‘환상’과 ‘동경’으로 탄생한 노래들이다.
‘서귀포 사랑’도 이런 뭍사람들의 제주, 특히 서귀포에 대한
환상과 그리움이 겹쳐 세상에 나온 노래다.
이 노래가 나온 56 년 국민들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국가 재건 의지에 불타 있었다.
정부에서는 자욱한 포연속에 먹고 살기도 힘든 국민의 현실을 달래줘야 했다.
중앙방송국 ‘건전가요 보급반’은 바로 국민들의 피폐한 정서를 북돋울
‘건전가요’를 만들고 부르는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인기 정상을 질주하던 송민도씨가 이 노래를 부른 것도
‘건전가요 보급’차원에서 였다.
이 노래의 작사자 강사랑씨(본명 강대훈.1910~1985), 작곡자 나화랑씨
모두 중앙방송국 건전가요 보급반 동료였다.
강사랑씨와는 중앙방송국에서 인사나 나누는 정도였고, 나화랑씨는 같은 레코드사에
소속돼 있어 꽤 안면이 있었던 것으로 송민도씨는 회고했다.
노래를 만들면 부르는 것은 가수 몫이었다. ‘고향초’ ‘애수’로 국민들의 시름을 달래주던
얼굴 없는 가수 송민도씨는 이후 ‘나의 탱고’로 부동의 인기 정상을 고수하고 있었다.
‘서귀포사랑’이 송민도 히트곡 반열에 오른데는 서귀포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서정적인 노래말, 저음가수 송민도의 가창력이 큰 몫을 했다.
송민도씨는 대부분 여가수들과 달리 간드러진 소리 대신 잔잔하고 애상적인 저음으로
국민들의 가슴을 사로잡았다. 차분한 저음이 ‘세련된 가수
’‘개성있는 가수’로 송민도씨를 각인시켰다.
특히 대학생등 젊은층과 인텔리층에서 인기가 있었다.
‘서귀포사랑’이 히트곡 반열에 오른 또 한 요인은 서정적이고 결고운 가사다.
노래말은 남녀간 사랑과 이별을 주테마로 하면서도 ‘환상의 섬’, ‘미지의 세계’였던
제주를 향한 충분한 동경이 일도록 애틋하게 썼다.
“초록 바다 물결위에 황혼이 오며 사랑에 지고 새는 서귀포라 슬픔인가…”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섬여인들의 사랑을 잔잔하고 애틋하게 담고 있다.
서귀포의 초록바다에 해가 지면 부두에서 이별한 임 생각이 간절하다.
칠십리 해안선에 추억이 가득하고, 먼 바다 뱃고동 소리만 들어도
행여 임인가 몸서리치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봄이 돼 동백꽃 향기가 섬을 휘감을 쯤 보러 온다던 임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섬여인들의 사랑은 묵묵히 참고 견디는 전형적인 한국여인의 사랑이다.
그리울 때 바다를 보고, 그도 안되면 ‘한숨’짓다가, 추억의 거리를 걷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 노래엔 제주 가요에서 자주 등장하는 해녀도, 감귤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임과의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말하고 있다.
‘동백꽃’이 등장한 것은 작사자 강사랑씨의 고향이 여수인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애잔한 저음이 철썩철썩 때리는 파도를 탈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더욱 애절하게 추억하게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강씨가 서귀포를 보고 가서 이 노래말을 지었느냐는 생각해볼 문제다.
왜냐하면 노래말 대부분이 제주관련 가요 대부분이 그렇듯
‘서귀포 칠십리’를 모방한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1941년에 나온 ‘서귀포 칠십리’(조명암 작사, 남인수 노래)의 눈부신 노래말은
이후 나온 제주 노래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철썩이는 파도’ ‘칠십리 밤하늘’ ‘비바리’ ‘밀감꽃’등등이
‘서귀포 바닷가’ ‘서귀포 처녀’
‘서귀포를 아시나요’ 등에 그대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작사가로 활동하는 정두수씨의 말을 빌리면,
제주에 한 번은 다녀간 듯도 하다. “강사랑씨는
‘삼다도소식’을 만들었던 박시춘씨의 매니저였다.
박시춘씨와 친분을 고려하면, 박이 한국전쟁중 해군정훈국 연예단원으로
제주에 왔을 때 다녀가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제 부두의 이별로 옷고름을 적셨던 그 시절 가난한 연인들은 백발이 됐다.
칠십리의 추억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 시절 낭만이 없어졌고, 사랑관도 변했다.
칠십리를 구비돌던 그 길도 이젠 곧은 포장길이 됐다.
무엇보다 서귀포는 관광도시로 이름을 세계만방에 날리고 있다.
그래도 이 곳 해안은 사랑에 목마른 연인들로 북적인다.
뱃고동 소리에 손을 흔들던 연인대신 신혼부부들의 물결로 출렁인다.
그 시절 추억을 주울 수 있을까만. 찬란하게 부두에 닿았던 쌍돛대, 동백꽃 향기,
칠십리 하늘의 푸른 별. 아직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귀포를 찾는 이유가
바로 이것은 아닐지. 섬에 대한 동경은 아직도 유효하다.
글 출처 : 제주 일보 (1998 년 1 월 5 일)
♣머무시는 동안 즐거우셨으면 합니다♣
★一片丹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