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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옛노래

♬映山紅(1942년)/이화자♬

  
    ♬映山紅(1942년)/이화자♬ (작사 조명암/작곡 이봉룡) 1.♬ 비오는 꽃 서울 해가지는 창별에 피어서 꿈을 꾸는 영산홍이여 바람에 지려거든 기다리는 사람의 다정 한 가슴우로 날려 지려나 2.♬ 가냘픈 노래로 지는 해를 보내면 가로등이 비에 흐리어 불러도 대답없는 영산홍의 하소연 별 없는 밤이 찾아 옵니다 3.♬ 새빨간 영산홍 타오르는 꽃잎에 보슬빈 어쩌자고 흐득이는고 우는것 어리석은 젊은날의 벤치요 영산홍 꽃잎처럼 웃어오리다 이화자 가수 출생,사망:1915~1950 (인천)으로 민요의 여왕으로 불리울 만큼 매끄러운 목소리로 민중을 사로 잡았다 합니다. 1936년 뉴코리아레코드의 섬사악씨로 데뷔 1938년 꼴망태 목동.님전화푸리.1939년어머님전 상백. 1940년 화류춘몽,화륜선아가거라. 관서신부. 눈물의노리개. 가거라초립동.등등 1941년 가거라 초립동. 그리고 꼴망태목동.목단강편지.등등 이화자(李花子,본명:이원재 1916년~1950년)는 일제 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가수이다. 출생지와 학력, 정확한 생년 등 개인 신상에 대한 내용이 모두 전해지지 않는 가수이다. 13세 무렵부터 술집에서 작부로 일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고만 알려져 있다. 정식으로 가수가 된 것은 20세 전후이던 1935년이었다. 포리돌레코드의 김용환(김정구의형)이 현 인천 부평구 지역의 한 술집에서 노래를 하던 이화자를 발굴하여 데뷔시켰다. 데뷔곡은 뉴코리아레코드에서 발매한 신민요 〈초립동〉였다. 뉴코리아레코드에서 <섬시악시>,<평양은 좋은 곳>, <월미도>등을 불러 이름을 알렸다. 신민요 장르에 강했던 포리돌레코드에서 〈천리몽〉을 발표한 뒤 1938년 오케레코드로 옮기면서 최고 인기의 가수에 반열에 올랐다. 김용환 작곡의 〈꼴망태 목동〉, 님 전 화풀이가 오케레코드에서 발표한 대표곡이다. 이화자는 잡가풍의 신민요와 애닯은 트로트에 고루 능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주로 여성 화자가 넋두리조로 신세 한탄을 하는 내용의 서민적인 노래를 불렀는데, 호소력이 뛰어났다. 자전적인 가사를 담은 자서곡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어머님전 상백〉과 기생의 한많은 삶을 그린 〈화류춘몽〉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가 종료된 후에는 히트곡을 내지 못했다. 태평양 전쟁 중에 취입한 친일 가요 〈목단강 편지〉가 마지막 히트곡이 된 것이다. 1940년대부터 손을 댄 아편에 중독되어 건강을 많이 상하고 잠깐의 결혼 생활도 실패로 끝나면서 폐인과 같은 생활을 했다. 주로 무대 공연으로 연명하다가 1950년을 끝으로 활동 기록이 없다. 이 무렵 홀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SIDE=A 오케,레코드 31113-A 1942년 7월 이화자 = 영산홍 ↔ 조명암 작사 이봉룡 작편곡 SIDE=B 오케,레코드 31113-B 1942년 7월 이화자 = 일편정성 ↔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편곡
성악선교대학
♣머무시는 동안 즐거우셨으면 합니다♣
 ★一片丹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