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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옛노래

♬주유천하(周遊天下) / 명국환♬

  
    ♬주유천하(周遊天下) / 명국환♬ (조흔파 작사 김호길 작곡) 1.♬ 만승에 높은자리 아우님께 사양하고 비웃음 손가락질 한잔술에 잊으련다 푸른 물 붉은단풍 초야에다 몸을 묻어 하 ~ 너털웃음 휘파람에 한숨지네 2.♬ 금지라 옥엽이라 귀하신 몸 오늘에는 떠도는 구름이냐 흘러가는 물이련가 지는 해 돋는 달에 늘어나는 주름살이 봄바람 가을비에 흰수염이 향기롭네 주유천하 [周遊天下] 온 세상 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유람함 앨범:영화 주제가집 제5집 [피리불던 母女고개] 제조회사:신세기 축음기 주식회사 제작 SLB 10354 SIDE=A 01 황금심 - 피리불던 모녀(母女)고개 (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02 도 미 - 사랑의 메아리 (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03 명국환 - 주유천하(周遊天下) (조흔파 작사 김호길 작곡 04 안정애 - 상처(傷處)뿐인 미녀(美女)(허구 작사 전인성 작곡 조춘영 편곡) 영화 '다이알 112를 돌려라' 주제가 SIDE=B 01 황금심.백설희 - 사랑의 뱃길삼만리(三萬里) (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02 백설희 - 낙엽(落葉)은 눈물처럼(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03 나애심 - 아카시아 꽃잎필때 (정성수 작사 전오승 작곡) 04 백 조 - 내갈곳은 어드메인고 (정성수 작사 전오승 작곡) 영화 '다이알 112를 돌여라' 주제가 효령대군 이름 보(補). 초명 호(祜). 자 선숙(善叔). 시호 정효(靖孝). 태종 이방원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이다. 부인은 정역의 딸 예성부부인이며 6남 1녀의 자녀를 두었고 측실에게서 1남 1녀를 두었다. 독서를 즐기고, 활쏘기에 능해 태종을 따라 항상 사냥터에 다녔으며, 효성이 지극했다. 형인 양녕이 세자에서 폐위되자 자신이 세자로 책봉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동생 충녕이 세자로 책봉되자 불교에 심취하였다. 충녕과는 우애가 깊었고 세종이 자기 집에 들르게 되면 밤이 깊도록 국사에 대해 의논했다고 전한다. 특히, 불교에 독실하여 수많은 유신(儒臣)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승도(僧徒)를 모아 불경(佛經)을 강론하도록 했다. 1435년 회암사 중수를 건의했고, 1464년(세조 10) 원각사(圓覺寺)를 창건하게 되자 조성도감 제조(造成都監提調)가 되어 역사(役事)를 친히 감독했고, 《원각경(圓覺經)》을 국역(國譯)하여 간행하였다. 문장에도 능하였다. 성격이 원만하여 친족들과 우애가 깊었고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까지 거치면서 91세까지 장수하였다. 효령대군(孝寧大君, 1396년~1486년)은 조선시대 전기의 왕자, 왕족이며 정치인이다. 조선의 제3대 국왕 태종의 둘째 아들이며, 원경왕후 민씨의 소생이다. 세종의 둘째 형으로 성은 이(李), 이름은 보(補)이다. 초명은 호(祜)였는데 19세에 보(補)로 고쳤다. 자는 선숙(善叔), 호는 연강(蓮江), 시호는 정효(靖孝)이다. 세종대왕의 형이자 세조의 숙부로 왕실의 원로였으며, 조선의 숭유 억불 정책으로부터 불교를 옹호,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세종대왕 즉위 후에도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등 6대에 걸쳐서 장수를 누렸다. 임사홍은 그의 손녀 사위였고, 이량은 그의 5대손이며, 명종의 부인인 인순왕후와 심의겸, 심충겸은 그의 외6대손이다. 생애 초반 12세에 해주정씨를 부인으로 맞이하였고 17세에 효령대군으로 봉해졌다. 어릴적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여 30세 전에 이미 학문과 덕성을 이룩하였고 붓글씨에도 능해 명필이었다고 전해진다. 활쏘기에 능숙하였고 효성이 지극하여 부왕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는 일찍부터 좌찬성 정역(鄭易)의 딸과 혼인하여 6남 2녀를 낳았으며, 서자녀로 1남 1녀를 두었다. 불교를 좋아하여 승도를 모아 불경을 강의하였다. 불교 활동 불교를 독실히 믿어 조정의 숭유억불 정책하에서 불교 보호의 방패 역할을 감당하였다. 원각사 창건 때에는 조성도감 도제조를 맡았다. 이 때 주조되어 1985년까지 보신각에 달려 있던 큰종과 탑골공원의 10층 석탑은 그 제조기법이나 예술성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10층 석탑은 국보 제2호로, 원각사지 대종은 보물 제2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 《법화경》, 《금강경》, 《원각경》, 《반야심경》, 《능엄경》, 《선종영가집》 등 불경의 번역과 교정에도 힘썼고, 많은 사찰을 순회하면서 신도들을 온후하게 계도하였다. 그리고 향촌의 자치규약인 향헌(鄕憲) 56조를 지어 백성들의 윤리 도덕심을 함양하였으며 유불심법동일원(儒佛心法同一原)의 이념을 추구하였다. 생애 후반 1396년(태조 5, 丙子年) 9월 16일(음력)[1]에 태어나 91세의 천수를 다하고 1486년(성종 17, 丙午年) 5월 11일(음력)에 세상을 떠났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에 예장되었다. 묘소는 1972년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다. 현 사당은 1736년(영조 12)에 왕명으로 효령대군 묘 앞에 처음 세우면서 '청권사'라고 하였다. 슬하에 7남을 두었으며 1460년(세조6) 정월, 여섯째 아들 원천군(原川君)을 병사한 아우 성녕대군에게 출계시켜 대를 이어 제사를 봉향할 수 있도록 하였다. 생전에 손자 33인, 증손자 109인으로 후손이 번성하였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파종회 중에 자손이 가장 번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특별시는 1984년 11월 7일 청권사 앞길을 '효령로'로 명명하였다. 전해오는 이야기 효령대군을 모신 사당을 청권사(淸權祠)라 불리는데 ‘청권’의 뜻은 옛날 중국 주(周)나라의 우중(虞仲)왕자가 아버지 태왕(太王)의 뜻을 헤아려 아우에게 왕위를 양보한 미덕을 칭찬하면서 공자(孔子)가 청권이라고 하였다는데 유래한다. 청권(淸權)이란 중국 주(周)나라 때 태왕(太王)이 맏아들 태백과 둘째아들 우중을 건너뛰어 셋째아들 계력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태백과 우중 두 형제는 부왕의 뜻을 헤아려 삭발하고 은거하며 왕위를 사양했다. 훗날 공자가 태백은 지덕, 우중은 청권이라고 칭송하였다. 이러한 고사를 본떠 양녕대군을 모시는 사당을 지덕사, 효령대군을 모시는 사당을 청권사라 이름 하였다. 효령대군은 아버지 태종(太宗)의 의중을 헤아려 아우인 충녕대군(세종대왕)에게 왕위를 양보한 미덕을 세종대왕이 '나의 형(효령대군)이 곧 청권'이라고 칭송하였고, 정조(正祖) 대에 이르러 효령대군의 사당을 청권사로 사액(賜額)하였다. 효령대군의 사당과 묘소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효령로에 있으며,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조선 중기의 문신, 김시민(金時敏, 1681~1747)이 편집한 『조야휘언』필사본에는 '세종이 태평관에서 중국 사신을 맞이하여 잔치를 하는데 효령대군이 술을 권하자 일어나 받았다. 이를 보고 사신이 말하길 "임금이 형을 우대하는 것이 이와 같구나"라고 하였다'는 사실을 서술하였다. 당시 왕실의 형제간 우애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관악산 연주봉 남쪽 기슭에는 연주암(戀主庵)이라는 사찰이 있는데 관악산의 최고봉인 연주봉(629m) 절벽 위에 연주대(戀主帶:경기도 기념물 제20호)가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서 남쪽 과천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연주암이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로 나한도량(羅漢道場)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 사찰이다. 나한은 여섯가지 신통(神通)과 여덟가지 해탈을 모두 갖추어 인간과 천인들의 소원을 성취시켜 주는 복전(福田)이기 때문에 통일신라시대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어 있다. 연주대는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권유로 의상대 자리에 석축을 쌓고 30㎡ 정도의 대를 구축하여 그 위에다 암자를 지은 것이라 한다. 이곳에 특이하게도 효령각을 만들어서 효령대군의 영정(경기도 문화재 제81호)을 봉안하고 있다. 찾는 등산객의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으로 소문이 나있는 곳이기도 하다. 1411년(태종 11), 동생인 충녕(세종)에게 보위를 양보하고 전국을 떠돌던 양녕과 효령이 이곳에 머무르면서 관악사를 현위치로 옮기고 연주대의 이름을 따서 연주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위치를 바꾼 이유는 관악사의 원래 위치에서는 왕궁이 바로 내려다보였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기타 그의 아들 중 보성군의 후손들이 번창하여 역대 주요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보성군의 사위 임사홍은 성종과 연산군 대의 문신이며, 그의 아들(효령대군에게는 외증손) 임광재는 예종의 딸 현숙공주와 혼인하고, 다른 아들 임숭재는 성종의 딸 휘숙옹주와 혼인하여 왕실의 인척이 되었다. 보성군의 증손 전성군 이대는 생전에 용강현령, 병마동첨절제사에 이르렀지만 다시 후손들의 출세로 증(贈) 호조참판, 호조판서를 거쳐 의정부 영의정으로 여러 번 증직을 받았다. 전성군 이대의 아들이 이량이고, 딸 부부인 이씨는 청송 심씨 심연원의 아들 심강과 혼인하여 자녀를 두었는데, 딸이 인순왕후로 명종의 비가 된다. 아들은 심의겸과 심충겸으로, 심의겸은 서인(西人)의 초대 당수가 된다. 선조, 광해군 때의 형제 정승 이충과 이명 역시 효령대군의 후손이자 보성군의 7대손이다.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정치인 만송 이기붕 역시 보성군의 후손으로, 효령대군의 20대손이자 보성군의 19대손이며 전성군 이대의 16대손이었다.
♣머무시는 동안 즐거우셨으면 합니다♣
 ★一片丹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