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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日本 演歌)Music

♬미나또 마찌 13번지/미소라 히바리♬




    ♬미나또 마찌 13번지/미소라 히바리♬ 1.♬ 長い旅路の 航海終えて 낭아이 타비지노 코오까이 오에떼 기나긴 여행길의 항해가 끝나고 船が港に 泊る夜 후네가 미나토니 도마루요루 배가 항구에 정박한 이 밤 海の苦勞を グラスの酒に 우미노 쿠로오오 구라스노 사께니 바다위에서의 고생을 술잔속의 술로 みんな忘れる マドロス酒場 민나 와스레루 마도로스사까바 깨끗이 잊어버리는 마도로스의 술집 ああ港町 十三番地 아아 미나또마찌 쥬우삼반찌 아아, 항구마을 13번지 2.♬ 銀杏竝木の 敷石道を 이쵸오나미키노 시키이시미찌오 은행나무 가로수 드리워진 보도위를 君と步くも 久し振り 키미또 와루꾸모 히사시부리 당신과 걷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点るネオンに さそわれながら 토모르네온니 사소와레나가라 반짝이는 네온사인에 이끌려 波止場通りを 左にまがりゃ 하또바도오리오 히다리니마가랴 선창길 왼쪽으로 꺾어들면 ああ港町 十三番地 아아 미나또마찌 쥬우삼반찌 아아, 항구마을 13번지 3.♬ 船が着く日に さかせた花を 후네가츠쿠히니 사까세따하나오 배가 도착하는 날 피웠던 꽃을 船が出る夜 散らす風 후네가데루요루 치라스카제 배가 떠나는 밤 다시 지게하는 바람 淚こらえて 乾杯すれば 나미다 코라에떼 감빠이스레바 눈물을 삼키며 건배를 하면 窓で泣いてる 三日月樣よ 마도데나이떼르 미까즈끼사마요 창가에서 울고 있는 초승달님이여 ああ港町 十三番地 아아 미나또마찌 쥬우삼반찌 아아, 항구마을 13번지
    일본의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는 1937년 5월29일 요코하마시(橫浜市)에서 출생하여 
    9세(1946년)의 어린 나이부터 연예활동을 시작, 11세부터 배우로 본격 할동을 하게 된다. 
    본명은 가토 가즈에(加藤和枝). 학력은 세이카가쿠잉 고교(精華學園高校) 출신이라는데 
    확실치는 않다고 하는가 하면, 아버지인 카토 소키치(加藤增吉)가 
    한국인이라는 유력한 설이 있다.
    가요는 12세 때에 부른 <가빠 부기우기(河童ブギウギ)>가 최초이며, 대표곡으로는 
    <야와라(柔)>,<미다레가미(みだれ髮)> 등이 있다.
    이외에도 그녀가 27세 되던 해부터는 TBS-TV가 그녀의 이름을 딴 
    <미소라히바리 극장>이란 프로도 만들었으며, NHK 홍백가요제전에 
    16년 계속 출연하는 기록도 갖고 있다. 
    1987년(50세) 4월 양다리 대퇴골 골절 및 만성간염으로 입원, 8월에 퇴원, 
    10월에 연예계복귀, 1988년 4월 도쿄돔(東京ド-ムで)에서 성공적인 재기콘서트를 가졌다. 
    이때의 관람객이 5만명이었다고 한다.
    1989년 6월29일 간질성 폐렴으로 죽기 3개월 전까지도 연예활동을 한 그녀는 
    죽은 후(7월)에 레코드대상, 특별영예가수상과, 여성 최초로 '국민영예상'을 
    수상하는 52년 생애에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미소라 히바리. 그녀의 죽음을 일본의 모든 방송국은 임시뉴스로 전국 방방곡곡에 알렸고, 
    마치 국장(國葬)을 지내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일본이 존속하는 한 영원히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그런 존재로 남아 있다.
    교토에서 기차를 타고 한 20분 걸려 아라시야마 역에서 내려 유명한 도월교(渡月橋)쪽으로 
    한 10분 걸으면 미소라 히바리 기념관이 있다. 
    미소라 히바리의 얼굴간판이 있는 지하 1층, 지상 3층 짜리 건물이다. 
    1층 로비에는 미소라 히바리의 동상이 손을 모은 공손한 자세로 손님을 맞고 있다.
    관내에는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고, 
    층마다 미소라 히바리의 음악·영화가 전시·연출되고 있다. 
    레코드 판·영화 포스터·스틸 사진들...... 
    그녀의 일상 모든 것이 전시되고 있다. 
    그녀의 거실과 아틀리에도 그대로 옮겨와 있었다. 
    의자·소파·화장대...... 
    지하에서는 그녀의 보석·핸드백·신발·양산 등이 전시되고 
    그것을 리메이크한 제품을 팔고 있다. 
    식당에서는 그녀가 즐기던 음식을 다시 만들어 내놓고 있다. 
    그녀에 대해 쓴 책들도 모두 모아져 있다.
    한마디로 굉장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재일 한국인으로 알려진 미소라 히바리는 불후의 명가수이자 
    일본인들의 우상이었으며 지금도 그 명성은 떡訃?흔들리지 않고 있다. 
    1937년 5월 29일 네 남매의 장녀로 태어난 미소라 히바리는 
    본명이 카토우 카즈에(加藤和枝)라고 불리었다. 
    어렸을 때는 앞 이마가 유난히 튀어나왔던지 옆집 아저씨가 
    “저 생선가게 주인은 망치가 필요 없겠어. 
    글쎄! 딸아이 앞이마가 툭 튀어나온 게 그걸로 못을 박아도 되겠어!”라고 하여 
    우연히 이 소리를 엿듣게 된 미소라 히바리 부친과 
    심하게 치고받고 했다는 자서전 기록도 있다. 
    생선가게의 딸로 말도 많았고 어린애가 어른 노래를 부른다고 
    차가운 눈초리를 받고 자랐다고 한다. 
    목소리는 창과 시조를 좋아하던 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고 그녀는 회고한다. 
    그러나 노래 한 우물로 인기를 독차지하며 42년을 보낸 그녀에 관한 자서전 및 
    70여 가지나 되는 많은 관련 서적이 있는데 아버지가 한국계로 알려져 있으며, 
    생전에 이미자씨와도 3개월간 공연을 했다 하며, 한국공연을 염원했으나, 
    당시는 일본문화 개방이 불가하였던 시대라서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 미련은 많았다. 전후 일본인들은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가 재건에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생애 레코딩수 : 1500곡
    오리지널 곡수 : 517곡
    소속 레코드 회사 : 콜롬비아 뮤직 엔터테인먼트 주식회사
♣머무시는 동안 즐거운 시간 되십시요♣
★一片丹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