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湯島の白梅(昭和 17年)/(小畑 實=康永喆) ♬
1.♬
유시마 토오레바 오모이다스
湯島通れば 想い出す
유지마 지나가면 생각이 나네
오쓰타 치카라노 코코로이키
お蔦主税の 心意気
오쓰다 지까라의 의기를
시루야 시라우메 타마가키니
知るや白梅 玉垣に
아는가 흰 매화 신사 울타리에
노코루 후타리노 카게보우시
残る二人の 影法師
남아 있는 두 사람의 그림자
2.♬
와스레 라레요카 쓰쓰이쓰쓰
忘れられよか 筒井筒
소꿉친구를 잊을 수 있을손가
키시노 야나기노 엔무스비
岸の柳の 縁むすび
강변 버들의 맺어진 인연
카타이 치기리오 기리유에니
かたい契りを 義理ゆえに
굳은 언약을 의리 때문에
미즈니 나가스모 에도소다찌
水に流すも 江戸育ち
없던일로 하는것도 에도에서 자랐기에
3.♬
아오이 가스토우 케이다이오
青い瓦斯燈 境内を
파란 깨스등의 경내를
데레바 혼고우 키리토우시
出れば本郷 切通し
나오면 고향의 깎아낸 길
아카누 와카레노 나카소라니
あかぬ別れの 中空に
새지 않은 이별의 중천에
카네와 스미에노 우에노야마
鐘は墨絵の 上野山
종소리는 수묵화의 우에노 산
[梅花] 湯島の白梅=유시마의 흰 梅花
노래를 듣다가 한 사람의 생애를 살펴볼 때가 있다.
<유시마 흰 매화>라는 노래를 들어보니 원창자가 평양출신 오바타 미노루(小畑 実) 이었다.
이상하게도 이중의 정체성으로 살아간 사람들의 인생에 관심이 간다.
어찌 사람이 하나의 인격이나 정체성으로 획일화되어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하나의 정체성을 강요당하면서 살았던 시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여 태어나
일본인으로 살아가며 일본어를 쓰면서 가수로 열도를 접수한 한 사람의 인생을 한번 살펴보자.
일본 위키피디아에서 요약 정리하였다.
<유시마 흰 매화>는 들을 때마다 애틋하다.
여러 가수들이 따라 불렀는데 어찌된일인지 미야코 하루미나
텐노 요시미등 한국계 가수들의 노래가 와 닿는다.
오바타 미노루(小畑 実, 1923년 4월 30일-1979년 4월 24일)은 평양 출신의 가수이다.
본명은 강영철(康永喆)이다.
1937년 동포의 테너 가수 김영길(金永吉, 일본식 이름: 永田絃次郎(나가타 겐지로)을 동경하고
16세에 일본에 건너가 일본 음악 학교에 입학한다.
고학하면서 성악을 배우고 1941년에 졸업한다.
그 후에는 에구치 요시(江口夜詩)의 문하가 된다.
이즈음 하숙의 집주인인 아키타현 오다테(秋田県大館) 출신의
오바타 이크(小畑イク)의 보살핌을 받는다.
오바타(小畑)성과 아키타 출신을 지칭한 이유로 꼽힌다.
또한 이크의 아들인 오바타 다쓰오(小畑達夫)는 이른바 공산당 린치 사건에서 사망한다.
데뷔는 1941년 2월, 폴리돌 레코드에서 <칭기즈칸>이었다.
한반도 출신임을 숨기고 출신지를 아키타현으로 하었다.
나중에 빅터로 이적했고 다음 1942년 <유시마 흰 매화>가 출세작이다.
1943년에는<긴타로의 달밤 노래> 를 히트시키는 신진 가수로서 주목을 받지만
본격적인 활약은 종전 후였다.
테이치크·킹·콜롬비아·친정인 빅터와 소속사를 전전했지만
달콤한 크루너 창법(소리를 죽여가며 속삭이는 듯한 정서로 노래하는 가수)으로
<빨판상어의 노래>· <장미를 드십시오>· <미국 다니는 하얀 배>·
<나가사키의 비누 팔이>· <런던의 거리에서 >· <고원의 역이여 안녕> 등
태평양 전쟁을 아우르며 많은 히트곡을 낸다.
특히 <별빛의 오솔길>은 프랑스의 샹송을 바탕으로 한 낭만적인 선율과
“아이 러브 유”라는 영어를 가사로 이용한 참신함에다 그의 가창의 특징을 살린 걸작이다.
<平凡>의 인기 투표에서는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와 함께 남녀의 1위를 계속했으나
1957년 카스가 하치로(春日八郎), 미하 시미치야(三橋美智也) 등장으로 밀려난다.
이를 계기로 그 해의 제8회 NHK홍백가합전 출전을 마지막으로 한번 은퇴한다.
한때는 실업계로 옮기면서 라스 베이거스에서 호텔 경영에 나선다.
재일동포 사회에 관련에서 방적 회사의 이사에도 취임하고,
록본기에서 음식점 경영 등도 하지만 1969년, 때마침 흘러간 노래 붐이 일어
<긴타로 언제 돌아와>로 복귀한다.
한국에도 자주 건너가 본명으로 활약한다.
실제로 1965년과 1966년 한국의 경향신문과 동아일보에는 그의 귀국 소식과
음반 발표 그리고 리사이틀 기사가 실린다.
신문은 '한국의 크루너 가수'나 '일본의 톱스타 가수'로 소개하면서 그를 비중있게 다룬다.
쇼와 50년대에 들어갈 때부터 <한번 히트를 내고 싶다> 차로 지방에 갔다가
귤 상자 위에 타고 마이크 없이 노래를 부르고 레코드를 직접 판매하는 노래의 행상을 시작한다.
흔들림 없는 지위를 가진 왕년의 가수왕이 그것들을 도중에 던져버리고
갓 나온 신인처럼 캠페인을 한다는 것은 많은 파문을 불렀다.
분투한 보람이 있어 <별이 없는 바닷가> <온천 마을 시구레>는 히트를 기록한다.
그 후에 무대 활동이나 교도소 위문, 후진 지도에 정력적으로 임한다.
1979년 4월 24일 오후 4시 40분, 지바현 노다시(千葉県野田市)
<무라사키 컨트리클럽 제비꽃 코스> 플레이 중에 쓰러졌고
시내의 ‘아라카와 종합 병원’(荒川総合病院)에 구급 반송됐다가
오후 5시 10분에 급성 심부전으로 타계했다. 향년 55세.
당일은 오전 10시에 혼자 코스를 찾아 첫 대면의 세명과 라운드하였다.
1라운드 중간의 6번 롱 홀의 세컨드 샷중에 쓰러지면서
캐디가 달려갔을 때는 의식 불명이었다.
이 골프장에는 한 달에 5,6번 왔고 56세 생일을 전에 급사했다.
代表曲
成吉思汗(1941年2月発売)共唱:吉沢美穂子
明日の希望(1942年8月発売)
婦系図の歌(湯島の白梅) (1942年9月発売)共唱:藤原亮子。東宝映画「婦系図」主題歌
勘太郎月夜唄(1943年1月発売)共唱:藤原亮子。「伊那節仁義」主題歌
暁の交換船(1943年7月発売)共唱:藤原亮子
小太刀を使う女(1944年1月発売)共唱:藤原亮子
虹の都(1947年8月発売)
月夜のパイプ(1948年1月発売)
長崎のザボン売り(1948年4月発売)
小判鮫の唄(1948年10月発売)
おしどり笠(1948年12月発売)
薔薇を召しませ(1949年6月発売)
アメリカ通いの白い船(1949年7月発売)
星影の小径(1950年4月発売) ※数々の歌手達がカヴァーしている
涙のチャング(1950年10月発売)
高原の駅よさようなら(1951年6月発売) ※香川京子主演で映画化
山の端に月の出るころ(1951年6月発売)
雨のダンスパーティ(1951年7月発売)
ああ高原を馬車は行く(1951年10月発売)
女ごころを誰か知る(1951年12月発売)
ロンドンの街角で(1952年3月発売)
愛の旅路(1952年7月発売)
星のまたたく小径(1952年9月発売)
藤十郎恋唄(1952年9月発売)
セーヌの流れに/花の巴里の街角(1952年10月発売)
うたかたの恋(1952年11月発売)
アンジェラスの鐘(1952年11月発売)
ああ青春の夢いづこ(1953年2月発売)
ナポリの街から/カプリ島の夜(1953年5月発売)
新太郎街道(1953年4月発売)
アカシアの小径(1953年7月発売)
花の三度笠(1953年9月発売)
東京ブルー・ムーン(1953年9月発売)
そよ風のビギン(1954年6月発売)
長崎の街角で(1954年10月発売)
二十の頃(1954年12月発売)
涙の築地川(1955年1月発売)
霧降る高原の駅で(1955年8月発売)
船乗りシャンソン(1955年10月発売)
ただひとりの人(1955年発売)
残菊物語(1956年2月発売)
りんどう日記(1957年発売)
こころにユトリが湧いて来た(1957年発売)
勘太郎いつ帰る/未練のワルツ(1969年発売)
雨のメロディー/あの人はたそがれに(1973年発売)
湯の町しぐれ/流し唄(1976年発売)
星のない渚/はまゆうの道(1977年発売)
誰か夢なき/青いたそがれ(1977年発売)
さんざしの花(1978年発売)
悲しい芝居/今はもう明日(1978年発売)ラストシングル
김영길(金永吉, 일본식 이름: 永田絃次郎(나가타 겐지로) 평안남도 중화군 출신.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테너 성악가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에서 군가를 불러서 인기를 모은다.
말년에는 북송선을 타면서 재일교포의 북송선 탑승에 기폭제 역할을 한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음악 부문에 포함되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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湯島の白梅/小畑 實(오바타 미노루)~榎本美佐江(에노모토미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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湯島の白梅/藤原亮子
(藤原 亮子 - 후지와라료오코)
* 生誕 :1917年3月1日
* 死没 : 1974年1月27日 (満 56歳 没)
* 学歴 :東洋音楽学校
* 活動期間 :1937年 - 1974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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