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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日本 演歌)Music

♬みだれ髮(미다레가미=헝클어진 머리)/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

    ♬みだれ髮(미다레가미=헝클어진 머리)/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 (作詞 : 星野哲郞/作曲 : 船村徹) 1.♬ 카미노 미다 레니 테오 야레바 髮 の みだれに 手 を やれば 헝클어 진 머리에 손질을 하면 아카이 *케다시가 카제니 마우 赤 い *蹴出しが 風に 舞う 빨간 *<케다시>가 바람에 날 려 니쿠아 코이시야 *시오 야노 미사키 憎 や 恋しや *塩 屋 の 岬 밉고도 그리운 *<시오야>의 산부리 나게테 토도카누 오모이노 이토가 投げて 届かぬ 想いの 糸が 던져도 다다르지 않는 마음의 끈이 무네니 카란데 나미다오 시보루 胸 に からんで 淚 をしぼる 가슴에 휘감겨서 눈물을 짜 내 2.♬ 스테타 오카타노 시아와세오 捨てた お方の しあわせを 날 버린 그분의 행복을 이노루 온나노 *사가 카나시 祈る 女の *性 かなし 비는 여자의 *천성이 슬퍼요 쓰라야 오모타야 와가 코이 나가라 辛や 重たや わが 恋ながら 괴롭고 답답한 우리 사랑 이지만 오키노 세오유쿠 소코비키 아미노 沖の 瀨を ゆく 底曳き 網の 앞바다 여율로 가는 저인망 그물의 후네니 노세타이 코노 카타 나사케 舟に のせたい この 片 情け 배에 실어 보내고 싶은 이 짝사랑 3.♬ 하루와 후타에니 마이타 *오 비 春は 二重に 巻いた *帶 봄에는 두겹으로 둘렀던 *허리띠 미에니 마이테모 아마루 아키 三重に 巻いても 余る 秋 세겹으로 감아도 남아 도는 가을 쿠라야 하테나야 시오야노 미사키 暗や 涯てなや 塩屋の 岬 어둡고 끝이 없는 <시오야>의 산부리 미에누 고코로오 테라시테 오쿠레 見えぬ 心を 照らして おくれ 보이지 않는 이 마음을 비쳐나 다오 히토리 포ㅅ치니 시나이데 오쿠레 ひとり ぽっちに しないで おくれ 나홀로 외톨이가 되지않게 해 다오 カラオケ(카라오케) 美空ひばり - みだれ髮 [美空ひばり의 생애(生涯)] 일본의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 )는 1937년 5월29일 요코하마시(橫浜市)에서 출생하여 9세의 어린 나이부터 연예활동을 시작, 11세부터 배우로 본격 할동을 하게 된다. 본명은 가토 가즈에(加藤和枝). 학력은 세이카가쿠잉 고교(精華學園高校) 출신이라는데 확실치는 않다고 하는가 하면, 아버지인 카토 소키치(加藤增吉)가 한국인이라는 유력한 설이 있다. 가요는 12세 때에 부른 <가빠 부기우기(河童ブギウギ)>가 최초이며, 대표곡으로는 <야와라(柔)>,<미다레가미(みだれ髮)> 등이 있다. 이외에도 그녀가 27세 되던 해부터는 TBS-TV가 그녀의 이름을 딴 <미소라히바리 극장>이란 프로도 만들었으며, NHK 홍백가요제전에 16년 계속 출연하는 기록도 갖고 있다. 1987년(50세) 4월 양다리 대퇴골 골절 및 만성간염으로 입원, 8월에 퇴원, 10월에 연예계복귀, 1988년 4월 도쿄돔(Tokyo Dome;東京ド-ムで)에서 성공적인 재기콘서트를 가졌다. 이때의 관람객이 5만명이었다고 한다. 1989년 6월29일 간질성 폐렴으로 죽기 3개월 전까지도 연예활동을 한 그녀는 1989년 6월24일에 사망했다. 죽은 후(7월)에 레코드대상, 특별영예가수상과, 여성 최초로 '국민영예상'을 수상하는 52년 생애에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미소라 히바리. 그녀의 죽음을 일본의 모든 방송국은 임시뉴스로 전국 방방곡곡에 알렸고, 마치 국장(國葬)을 지내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일본이 존속하는 한 영원히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그런 존재로 남아 있다 美空ひばり의 마지막 노래「みだれ髮」의 가사가 새겨져 있는 비석(후꾸시마현-福島縣- 이와끼시- いわき市) 시오야자끼(鹽屋岬) 燈臺 いま 手を合わせ人人が 지금 합장하여 사람들이 送る言葉は「ありがとう」 보내는 말은「감사합니다」 愛を包んだ哀しみは 사랑으로 감싼 슬픔은 あなたがくれた置き土産 당신이 주고 간 선물 あなたがくれた置き土産 님께서 남겨놓은 사랑의 선물   後振り返る影もない 뒤돌아볼 그림자도 없어 遠い別れにただ泣ける 머나먼 이별에 오직 눈물 뿐   落ちる淚を數珠にして 떨어지는 눈물을 염주로 만들어   あなたに持って行かせたい 당신의 손에 꼬옥 쥐어서   あなたに持って行かせたい 떠나는 님과 함께 보내고 싶어라   ひばりは高くより遠く 종달새(ひばり)는 높게, 보다 멀리    とんで日本の靑い空 날아서 일본의 푸른 하늘   人がこの世に住む限り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あなたの歌は生きている 당신의 노래는 살아 숨 쉬리라 あなたの歌は生きている 당신의 노래는 영원히 살아 있으리라 1987년 4월21일, 후꾸오까(福岡) 재생회병원(濟生會病院)에 입원했을 때에는 "하느님은 나를 버리시려 하는가!" 라고 말하기 까지한 ひばり가 104일만에 퇴원하면서 한 첫 말은「노래하는 것만이 숙명입니다. 남은 인생을 신중히 살아가겠습니다」였다. 그 뒤 가요계에 복귀할 때까지 많은 고생과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을것이나 지금은 ひばり 스스로의 입으로 들을 수가 없다. 복귀 후 첫 작품은 작사가 '호시노 데쯔로오(星野哲郞)가 시오야자끼(鹽屋岬)의 등대에서 이미지가 떠올랐다는「미다레가미(みだれ髮)」다. 그리하여「생애의 절창(生涯の絶唱)」이라고 한 1988년 4월 11일의 토오쿄오 돔 공연으로 순조롭게 회복이 되어 가는 것으로 누구나가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갔다 「세끼슈우(惜愁)」는 이씨모도 미유끼(石本美由起)가 작사하고, 미끼 다까시(三木たかし)가 곡을 붙였다.. 이씨모도(石本)는 ひばり와 콤비로「(悲しい酒)」「港町十三番地」 「哀愁波止場」등 많은 힛트 곡을 내었다. 더욱이「悲しい酒」의 대사는 1966년 신쥬쿠 고마(新宿コマ)의 리하살 중에 간주가 길다고 생각한 ひばり가 급히 "대사를 넣고 싶으니 써 달라"고 부탁을 해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직감이라고나 할까, 이와 같은 재치가 그녀로 하여금 오늘 날 엔카의 여왕으로 군림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옮겨 온 글)
♣머무시는 동안 즐거우셨으면 합니다♣ ★一片丹心★